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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구마사제협회 설립자 아모르트 신부 선종

1985년 구마사제로 임명,,,구마사목 관련 저술 활동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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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구마사제로 임명,,,구마사목 관련 저술 활동 펼쳐

▲ 가브리엘레 피에트로 아모르트 신부.



국제구마사제협회 설립자 가브리엘레 피에트로 아모르트(성 바오로 수도회) 신부가 16일 로마의 한 병원에서 폐 관련 질환으로 투병 중 동료사제와 의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종, 하느님 품에 안겼다. 향년 91세.


1925년 이탈리아 중부 모데나 태생인 아모르트 신부는 1942년 17세 때 성 바오로 수도회 설립자이자 복자인 자코모 알베리오네 신부를 만나 성소를 꿈꿨고,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민병대에 입대해 활동하다가 기적적으로 생명을 구하는 체험을 했다. 이때 공로로 지난 9월 8일 로베르타 피놋티 이탈리아 국방부장관이 함께한 자리에서 바르지니아 라지 로마시장으로부터 국가훈장인 ‘해방훈장’을 받기도 했다. 1943년 고향 모데나로 돌아온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1947년 성 바오로 수도회 모원인 알바수도원에 입회해 1951년 1월 24일 사제품을 받은 뒤 평생 수도자의 길을 걸었다. 사제수품 이후 수도회 내에서 다양한 잡지의 편집장이자 기고가로 활동했으며, 수도회 지원자들을 양성하는데도 혼신의 힘을 다했다. 라디오마리아방송의 초창기 설립 멤버이기도 했다.


아모르트 신부가 세계적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1985년으로, 당시 로마대교구장 우고 폴레티 추기경에 의해 구마사제로 임명되면서부터다. 당시 로마대교구 구마사제 칸디도 아만티노(예수고난회) 신부가 건강이 좋지 않아 협력사제가 필요해지자 폴레티 추기경은 보조 구마사제로 아모르트 신부를 임명한 것.
 

아모르트 신부는 이때부터 당시만 해도 암흑에 가려져 있던 강령술과 무속, 점, 마술 등을 파헤치고 그 파괴적 결과에 대해 언급한 「구마사제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한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구마사목에 대한 저서를 펴냈고, 쓰는 책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이를 계기로 교회 안에서의 구마사제의 직무와 현실을 세상에 알렸고, 교구마다 적어도 1명의 구마사제를 임명해 강령술이나 무속 등에 고통을 받는 이들이 구마 준성사를 받고 의문을 상담해주도록 하는 데 산파역을 맡았다. 또한, 유럽 내 여러 교황청립 대학에 악마론 강의를 개설하도록 이끈 주역이며, 해마다 로마 교황청립 레지나 아포스톨로룸대학에서 새로운 구마사제 양성을 위한 구마와 해방기도 연수 과정을 개설해왔다. 이같은 열정적 사목활동을 통해 이탈리아에만 250여 명에 이르는 구마사제들이 활동하게 됐고, 세계로도 번져나갔다.  
 

이어 1990년에는 레네 케네소 신부와 함께 국제구마사제협회를 설립, 초대 회장을 맡아 2001년까지 12년간 회장직을 수행하며 교회 안에서 구마 직무를 수행하는 전 세계 구마사제들이 함께 모여 연구하고 사목적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이 협회는 현재 교황청 성직자성으로부터 인준을 받아 교회의 공식단체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모르트 신부의 저술 중 우리나라에는 「구마사제가 들려주는 이야기」, 「구마」 등 2권의 책이 번역돼 있다. 2015년 한국판 ‘엑소시스트 : 더 비기닝’이라고 할 수 있는 ‘검은 사제들’이 개봉되면서 덩달아 아모르트 신부의 책이 조명되기도 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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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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