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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자녀 중 4명이 성직 수도자인 가정, 1950년 평양에서...

아버지와 딸(수녀), 아들이 총살 또는 행방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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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복 법정이 개정된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가운데도 ‘가족 순교자들’이 있다. 서정요(프란치스코) 순교자와 그 슬하 4남 3녀 중 첫째이자 맏딸인 서원석(요셉,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 넷째이자 장남인 서운석(보니파시오) 신부, 여섯째이자 3남인 서경석(마르코) 등 4위다. 4남 3녀 중 1940년에 첫 서원을 하고 1년 뒤 폐결핵으로 병사한 둘째 서의석(아퀴노,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 월남한 뒤 사제품을 받았지만 수품 16년 만에 아깝게 선종한 막내 서우석 신부 등 7남매 중 성직자 2명, 수도자 2명을 배출한 신앙의 집안이기도 했다. 서운석 신부는 앞서 평양의 사제 순교자들에 포함해 소개했기에 이번 호에는 서정요와 서원석 수녀, 서경석의 삶과 신앙, 순교 행적을 따라가 본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자료=평양교구 사무국 제공


▲ 1940년 6월 27일 첫 서원 직후의 서원석(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수녀. 동생인 서의석(뒷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수녀도 함께 첫 서원을 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서원석(요셉) 수녀



장정온 수녀에게 ‘순명의 사람’이라 불려
 

서원석 수녀는 1914년 4월 27일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 동외동(현재는 동외동 폐지)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서정요(프란치스코), 모친은 여규식(마리아)이었고, 7남매 중 맏이였다. 세례명은 안젤라. 서 수녀의 부친이 의주본당 초대 주임인 숙부 서병익 신부를 따라 의주본당 사택에 살면서 복사로 살았고, 어머니 역시 주방 일을 도왔기에 그의 출생지는 ‘의주성당 구내’라고 기록돼 있다.
 

서 수녀는 부모에게 엄격하고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았고, 말수가 적은 데다 천성이 착했으며, 남의 눈에 띄지 않고 말없이 맡은 바 책임을 끝까지 완수하는 성품이었다.
 

1930년께 평양 성모보통학교를 졸업한 서원석은 이듬해 초 한국인 수녀회가 설립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한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였다. 1년 뒤인 1932년 6월 27일 평양 상수구리(현 평양직할시 중구역 만수동) 수녀원 경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수도회가 설립되자 4명의 지원자와 함께 첫 입회자가 됐다. 이어 1938년 3월 19일 교황청에서 수도회 설립 인가를 받기까지 지ㆍ청원자로 있으면서 1935년부터 3년간 도쿄 와세다대학에서 교외생을 위해 발행했던 ‘와세다 강의록’으로 중등교육 과정을 이수, 보통학교 2급 정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1940년 4월 27일 첫 서원을 한 서 수녀는 수도자로서 헌신적으로 순명하는 모습을 보여 장정온(악니다) 원장 수녀에게 ‘순명의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첫 서원 뒤 비현본당 분원에     지만 겸손한 성품의 그는 분원장 자리를 과분하게 여겼고 책임을 면하게 해주기를 간청했다. 이후 후배인 윤보순(골룸바) 수녀가 그 소임을 맡게 되자 진심으로 기뻐했다. 서 수녀는 성모보통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관후리본당 양로원 일을 돕는 한편 본당 신심단체인 성체회(여성청년회) 지도 수녀로서 열성을 다했다.
 

1944년 어머니가 선종하자 수도회의 특별 외출허가를 받아 수녀원 바로 옆 평양 하수구리(현 평양시 중구역 서문동)에 있던 집에 가서 살림을 보살폈다. 1950년 5월 14일 수도회가 일시 해산되자 동평양 선교리 양조장 공장 사택에 있던 집에 돌아가 아버지와 동생들을 돌봤고, 그해 10월 8일 내무성에 연행된 아버지와 동생 서경석(마르코)을 찾으러 갔다가 행방불명됐다. 같은 날 끌려간 이들이 모두 총살됐기 때문에 서 수녀 또한 총살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원석 수녀는
 

△1914년 4월 27일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 동외동 태생 △1930년 성모보통학교 졸업 △1932년 6월 27일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입회 △1940년 6월 27일 첫 서원 △1950년 10월 8일 정치보위부원들과 함께 나간 아버지 서정요를 찾으러 간 동생 서경석 마르코를 뒤쫓아갔다가 행방불명 △소임 : 비현본당 분원,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상수구리 본원장, 성모보학교 교사




▲ 메리놀외방선교회 선교사들과 함께 한 서정요 프란치스코(오른쪽).



서정요(프란치스코)


4명의 자녀를 하느님께 봉헌
 

서정요는 1890년 1월 8일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풍수원(현 서원면 경강로유현1길)에서 태어났다. 1866년 병인박해 때 풍수원으로 피신, 옹기를 구우며 살아온 집안의 3남 중 차남이었고, 1903년 동갑인 여규식(마리아)과 혼인했다. 숙부 서병익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의주본당 주임에 임명되자 부부가 함께 이사해 복사와 주방 일을 도왔다. 연이어 세 딸을 낳은 뒤 하느님께 아들을 주실 것을 기도했고, 이후로 아들만 넷을 더 낳았다. 이 중 둘을 사제로, 둘을 수녀로 봉헌했다.
 

1924년 서병익 신부가 13년간 의주본당 사목을 마치고 개성으로 옮기자 함께 개성으로 갔으나 1년 만에 신의주로 되돌아와 메리놀 외방 선교회 선교사들을 도왔다. 평양 근처 서포에 새 교구청 건립 공사가 시작되자 그는 가족과 함께 서포로 이주, 1931년 신축이 마무리되기까지 공사현장 감독을 맡았다. 날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쉴 새 없이 일하며 기도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공사가 끝난 뒤에는 새로 설립된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살림을 도왔고,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기도하며 집안을 성가정으로 이끌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들이 그를 ‘아버지’라고 불렀을 정도다. 일제 말기 수녀원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서문여자고등보통학교 기숙사 주방에서 일하며 자녀들을 양육했다. 1944년 부인이 죽으면서 사위(셋째 서예석 카밀라의 남편)의 주선으로 양조장 일을 하며 그 사택으로 옮겨 세 아들과 지냈다.
 

1949년 12월 7일 관후리본당 보좌로 있던 맏아들 서운석 신부가 체포돼 행방을 알 수 없게 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러던 중 1950년 10월 8일 양조장에 파견돼 있던 정치보위부원들이 회사 일로 의논할 게 있다며 찾아와 함께 나간 뒤 행방불명됐다. 같은 날 불려 나간 사람들이 모두 총살됐기에 서정요 또한 총살됐을 것으로 보인다.
 

 

서정요는
 

△1890년 1월 8일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풍수원 태생 △1911년 숙부 서병익 신부가 의주본당 주임에 임명되자 가족과 함께 의주로 이주 △1924년 서병익 신부와 함께 개성으로 이주 △1927년 평양으로 이주해 서포지목구청 신축 공사현장 감독 △1944년 사위의 양조장으로 이사 △1950년 10월 8일 정치보위부원들과 함께 나간 뒤 행방불명




서경석(마르코)


신앙인으로 나무랄 데 없는 삶
 

서경석은 1928년 4월 25일 평안남도 대동군 서천면 동포리(현 평양직할시 형제산구역 서포1동)에서 태어났다. 신앙이 깊었던 부모에게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신앙인으로서 나무랄 데 없는 삶을 살았다.
 

그는 서정요ㆍ여규식 부부 슬하 3남 4녀 중에서도 막내인 서우석 신부와 함께 유달리 똑똑해 부모의 기대가 컸다. 1935년 성모보통학교를 졸업했지만, 집안이 가난해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평양시 학무과에서 급사로 일했다. 그러던 중 학무과에서 만난 이해남 시학관(지금의 장학관)의 주선으로 2년제 평양공업전문학교 야간부에 들어가 학업을 계속했고, 졸업 뒤 전기 기술자가 돼 집안 살림을 도왔다. 해방 이후에도 동평양 선교리(현 평양시 선교구역 선교1동) 변전소에서 부소장으로 일했다.
 

1950년 10월 8일 밤 부친이 정치보위부원들에게 불려 나간 뒤 1시간가량 지나 부친을 찾으러 나섰다가 소식이 끊겼다. 당시 정황으로 미뤄 서경석 또한 총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경석은
 

△1928년 4월 25일 평안남도 대동군 서천면 동포리 태생 △1935년 성모보통학교 졸업 △1930년대 후반 평양공업전문학교 졸업 △해방 전후 동평양 선교리 변전소 근무 △1950년 10월 8일 부친 서정요를 찾아 나섰다가 행방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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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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