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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사고사, 그러나 50명이 살았다?

[신앙당상] 아름다운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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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 한 분이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붓고 충혈이 많이 되었다. 넋이 나간 채 경황이 없는 모습으로 사무실로 들어오신다. 그리곤 장례 절차에 대해 문의하신다.
 

수녀님의 남동생은 마흔한 살. 그러나 이젠 고인이 되어 빈소를 마련할 예정이다. 작업 현장에서 압사를 당했다고 한다. 즉사한 것이다. 중학생과 초등학생 자매 둘을 남겨둔 채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했으니 가족들 모두 경황이 없을 터였다. 그런데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고인의 어머니는 한참 생각하시더니 그 순간 힘들지만 아름다운 결정을 내리셨다.
 

“우리 아들이 건강한 몸이었으니 장기나 조직 기증을 하면 여러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겠어요.” 어머니의 말에 가족들은 선뜻 안 된다고 할 수가 없었다. 기증의 경우 대부분은 한두 가지 기증에 그치지만, 조직과 고인의 뼈까지 기증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나 또한 이런 경우는 처음 접해 본다. 아들을 잃은 슬픔이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울 텐데. 그 와중에 다른 사람을 살릴 생각을 하는 그 마음이 참으로 고귀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한편으로 ‘열심한 신자여서 다른 일반인들과 생각이 조금 다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장례 후 들어보니 고인으로 인해 50여 명의 환자가 살아날 수 있었다고 한다. 기적이다. 이런 기적이 너무나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다. 어머니와 가족은 그렇게라도 고인의 몸이 계속 세상에서 살아가길 원했을 것이다.
 

장기 및 조직 기증을 할 경우 고인이 장례식장에 도착하기 전 병원 수술실에서 필요한 조직(각막, 피부, 뼈, 인대, 혈관, 신경 등)을 채취한다. 다음 날 고인을 깨끗이 씻기고, 머리도 감겨드리고, 면도도 해드리고 수의를 입혀드린 다음 입관 전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고인의 모습을 확인한다. 가족들 보기에 거부감이 생기지 않도록 고인의 몸 안에는 뼈 대신 보형물을 심어둔다. 그렇게 하면 염습할 때에도 외관상 다른 고인과 다를 바 없고, 일반 장례를 모시는 분과 비슷하게 된다. 그렇게 가족들은 고인과 이별했다.
 

가끔 이렇게 기증하는 분들이 올 때면 가족 입장에서 고인 유언에 따라 장례를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가족들이 고인 뜻에 따라 절차를 진행해 주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아름답게 비친다. 여태껏 시신 기증은 많이 봐왔지만, 이번처럼 여러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인체 조직을 기증하는 분은 극히 드물다. 그것도 생존 시에 기증을 신청해 놓은 것이 아니라, 사후에 가족 결정에 따라 기증을 하는 경우 말이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아마도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몸을 다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되돌려 주고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도록 기증하는 고인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오묘하신 분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나 또한 죽은 육신을 화장하거나 매장하고, 납골한다거나 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이미 죽은 육신은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생전 잠시 이 세상에 소풍을 온 것이라 하신 신부님 말씀처럼 재미있게 이 세상에서 놀았으니, 이제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가는 것도 좋은 방법 아닐까.


결혼 후 남편과 상의해 서로가 서로에게 동의를 해주고 장기 기증을 신청해 놓았다. 그리고는 일상생활 속 대화 중에도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죽은 후에도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심은이 (데레사,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장례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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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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