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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요지’, 개신교를 아는 인물이 지어낸 위작”

윤민구 신부의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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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 책을 집필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윤민구 신부.

수원교구 윤민구(손골성지 전담) 신부가 이번에 책으로 발표한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는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 별다른 의심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천주교 관련 자료들에 대해 사료 분석이라는 비판적 잣대를 들이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벽의 ‘성교요지’에 대한 비판이다.



배경

김양선(1907~1970) 목사는 개인적으로 수집 소장해오던 자료들을 1967년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에 기증했다. 그 기증 자료들에는 천주교 관련 자료들도 있었고 그 가운데는 한국 천주교회 시작에 선구자적 역할을 한 이벽(요한 세례자, 1754~1785)과 첫 영세자 이승훈(베드로, 1756~17801)과 관련된 초기 천주교 자료들도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 대표적인 자료가 이승훈의 호 만천(蔓川)을 딴 「만천유고」(蔓川遺稿)였다.

이승훈과 그의 지인들이 쓴 글을 엮은 문집이라는 「만천유고」에는 이벽이 썼다는 ‘성교요지’와 ‘천주공경가’, 정약전(1758~1816)과 권상학(1761~?) 등이 지었다는 ‘십계명가’, 그 밖에 ‘천주실의발’(天主實義跋)과 ‘경세가’(警世歌) 같은 천주교 관련 자료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회사학계에서는 젊은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성교요지’와 ‘천주공경가’ 등을 이벽의 작품으로 당연시하면서 교회사 관련 연구에 활용했다. 이 자료들에 대한 사료 비판이 필요하다는 일부 지적도 있었지만 유야무야됐다. 사료 비판은 역사학 연구에서 필수적이지만 이 점이 소홀히 여겨졌고, 윤 신부는 서강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성교요지’와 「만천유고」 자체에 대한 사료 비판의 필요성을 다시금 깨닫고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어떻게 분석했나

윤 신부는 「만천유고」에 나오는 한문본 ‘성교요지’와 이를 모본으로 번역한 것으로 알려진 한글본 ‘성교요지’ 외에 「당시초선」(唐詩炒選, 당나라 시에서 뽑아 모음)이라는 또 다른 문집에도 한문본 ‘성교요지’가 있는 것을 보고 이 세 종류의 ‘성교요지’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성교요지’에 나오는 용어와 본문 내용 자체 그리고 그 내용의 교리적 의미 등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윤 신부는 ‘성교요지’에는 초기 천주교 신자들은 물론 박해 시기 신자들도 사용하지 않는 개신교 용어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주목했다.

예를 들면 감람(橄欖, 올리브)ㆍ유태(猶太, 유다)ㆍ약단(約但, 요르단)ㆍ이새야(以賽亞, 이사야)ㆍ법리새(法利賽, 바리사이)ㆍ희률(希律, 헤로데)ㆍ아백(亞伯, 아벨)ㆍ방주(方舟, 궤)ㆍ이색렬(以色列, 이스라엘)ㆍ야화화(耶和華, 야훼) 같은 한자들은 모두 개신교 용어라는 것이다. 천주교 관련 한문 서적들에서는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윤 신부는 논증한다.

한글본 ‘성교요지’도 마찬가지다. ‘성교요지’에서는 올리브를 감람나무이라고 표현하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오리와’라고 불렀다. 한글본 성교요지에서는 ‘노아’라고 하지만 천주교에서는 1977년 개신교와 공동번역성서를 같이 사용하기 전까지는 노아가 아니라 ‘노에’라고 불렀으며 ‘방주’가 아니라 ‘궤’라고 표현했다.

나아가 이벽이 ‘성교요지’를 썼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성교요지’ 본문 어디에서도 이벽이 썼다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고, 제목 아래에 붙이는 부기(附記)에 이벽의 호가 나오는데 한자로 광암이 아니라 광엄이라고 잘못 표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만 「당시초선」 한문본 ‘성교요지’에서는 이벽이 모아 편집했다고만 돼 있다.

그뿐 아니라 ‘성교요지’의 본문을 살펴보더라도 △초기 천주교나 박해 시대 천주교 신자들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구약성경 혹은 적어도 구약의 창세기가 번역된 이후에나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들 △천주교 교리와도 맞지 않는 내용들 △무슨 뜻인지 알 수도 없는 대목들이 나온다고 윤 신부는 지적한다.

한 마디로 ‘성교요지’는 이벽이 쓴 것일 수 없고, 초기 천주교 신자들이나 박해 시대 신자들을 위한 것일 수도 없다는 주장이다.

윤 신부는 ‘성교요지’ 외에 ‘십계명가’ ‘천주공경가’ ‘경세가’ 같은, 「만천유고」에 나오는 다른 천주교 관련 글들도 같은 방식으로 분석해 허구라고 주장한다.



누가 언제 왜 썼나

윤민구 신부는 여러 전거를 들어 한문본 성교요지는 아무리 빨라도 개신교 구약성경이 번역돼 소개되기 시작한 1906년 이후나 또는 우리나라에 개신교가 들어온 이후 중국에서 들어온 개신교 한문성서를 보고 쓴 것으로 추정한다.

한글본 성교요지는 한문본을 바탕으로 했기에 이보다 더 빠를 수 없지만, 한글본 성교요지 말미에 나오는 부기(附記)를 근거로 1920~1930년대 이후에 쓰였다고 추정한다.

그러면 왜 가짜 ‘성교요지’를 썼을까. 윤 신부는 두 가지 점을 주목한다. 하나는 1925년에 로마에서 79위 순교자 시복식이 거행되면서 천주교 안에서 순교자들과 관련된 유물이나 유품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런 관심을 이용해 순교자들의 것임을 빙자한 사기가 많았다는 것이다. 성교요지는 따라서 개신교와 관련이 있는 혹은 개신교 성경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인물이 지어낸 위서라는 게 윤 신부의 결론이다.



과제

한국사학연구소장 노용필(다니엘) 박사는 “역사학 연구에서는 사료 비판이 일차적이고 기본인데 최근 들어 소홀히 여겨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며 “윤 신부님의 연구는 이런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신부의 이런 주장에 대한 검증 작업도 요청된다. 따라서 윤 신부의 새로운 주장에 대해 얼마나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검증할 수 있느냐가 과제가 될 전망이다. 19일 교회사연구소에서 열리는 발표회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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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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