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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산에서 내려온 한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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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동창 신부님들과 일주일 정도 휴가를 함께 보낸 적이 있는데, 장마 기간이라 휴가 내내 비가 왔습니다. 거의 일주일 내내 비가 끊임없이 내렸고, 때로는 심한 비바람마저 불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마냥 좋았습니다. 소중한 친구들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휴가가 끝나기 바로 전날, 우리 모두는 비양도에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제주도의 또 아름다운 섬 비양도! 그 곳에 들어가는 배편은 하루에 세 번, 오전 9시와 12시 그리고 오후 3시에 있었기에 우리는 9시 배를 타고 들어갔다가 12시 배로 나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아침 7시에 숙소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9시 배를 타고 비양도에 들어가고자 한림항으로 갔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날씨는 잔뜩 흐린데 비는 오지 않을 듯해서, 네 사람 중에 두 사람은 우산을 가지고 갔고, 두 사람은 비 맞아도 되는 그런 옷을 입고 갔습니다.

표를 끊고 조금 기다리다 이내 곧 배는 출발했는데,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비양도의 매력은 배를 타고 가면서 ‘비양도에서 바라보는 제주도 경치’를 봐야하기 때문입니다. 경치가 정말 일품입니다. 하지만 먹구름이 제주도 전역을 덮고 있어서…, 전망은 꽝이었습니다. 그렇게 15분가량 배를 타고 비양도에 도착해 근처 식당에서 아침식사로 보말죽을 먹은 후 비양도를 한 바퀴 천천히, 천천히 돌았습니다.

그런 다음 비양봉 등대를 가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바람에 우산을 쓰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정자로 뛰어갔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히히, 우산 잘 가져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덧 비는 멈추고 우리는 다시 비양봉으로 올라가려는데, 화장실을 급히 가야한다는 신부님들이 있어서 나는 부두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순간, 고깃배 한 척이 들어오는 것이 보여서, 뭘 잡았는지 궁금해서 그 배가 닿는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가서 보니, 그 배는 전갱이를 가득 잡은 고깃배였는데, 귀한 한치도 잡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배 선장이 대뜸 나에게 ‘한치를 사겠느냐?’ 묻기에 나는 속으로 ‘요즘 날씨도 안 좋아, 회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이게 웬 떡이냐’ 싶어서, 잡은 한치를 있는 그대로 다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치 3㎏을 샀고, 더 넉넉하게 한치를 준 것 같았습니다.

화장실에 간 신부님들이 오더니, 내게 뭘 샀느냐 묻기에 “한치를 샀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신부님들은 잘했다고는 했지만, 왠지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았습니다.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한치 3㎏을 들고 비양봉에 올라갔다가 내려올 슬픈 내 모습을 미리 상상이나 한 듯 했습니다.

이윽고 우리는 함께 걸었습니다. 비양봉! 날씨만 좋으면 제주도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 하지만 비양봉 중간 즈음 올라가자,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오고 바람이 심하게 불면서 비가 억수처럼 쏟아졌습니다.

두 명의 신부는 뒤도 안 돌아보고 비양봉으로 올라가고, 한 명의 신부는 양손으로 우산을 잡고 비를 안 맞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한 손으로 우산을 잡고 비바람에 중심을 잡다가 그만…. 우산이 다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엄청나게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았습니다. 그런데 신부님들은 비양봉 정상에 갔다가 비가 너무 내린다고 서둘러 내려가자며 저만치 내려가 버렸고, 나는 계속 비만 쫄딱, 완전히 쫄딱 맞으며 한 손에는 부러진 우산, 다른 한 손에는 한치를 들고 내려갔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저 웬수들! 한 손에 들고 있던 한치 때문에 우산을 제대로 못 잡아 우산도 부러지고, 비도 쫄딱 맞은 내가 불쌍하지도 않나! 나를 위해 한치나 좀 들어주지…. 뒤도 안 돌아보고 저리들 내려가나, 이그 웬수들!’
(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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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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