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세상살이 신앙살이] (456) 때로는 명절이(상)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몇 년 전 어느 수도회 신학원에서 개인 피정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피정을 한 이유는 그 해 여름, 연중 피정이 있었는데, 다른 중요한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부득이 참석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9월 말 즈음, 평소 잘 아는 신부님에게 연락을 드려서, 그분이 원장으로 있는 신학원 손님방에 머물며 개인 피정을 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는 추석 명절과 공휴일이 겹쳐, 연휴가 꽤 길었습니다. 그래서 연휴가 시작되던 날, 원장 신부님은 식사 시간에 다음의 사항을 알려 주었습니다.

“신학원 형제들, 올해 추석 명절은 다른 때와 달리 신학원에서 형제들과 함께 형제애를 나누며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을 듣자 수사님들의 자그마한 탄식 소리가 잠깐이나마 들렸습니다. 하지만 수사님들 스스로가 원래 자신들은 집을 떠나 수도 생활을 선택했다는 사명감이 있어서 그런지, 그 상황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나 역시도 은근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신학원은 수사님들이 조를 짜서 식사 준비를 하는 공동체였기에, 연휴 동안 수사님들이 휴가를 가면 식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가 은근히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연휴 첫째 날, 신학원에 있는 젊은 수사님들은 오전에 건물 대청소를 했고, 각자 방 정리와 빨래 등을 하는 듯하더니, 오후에는 몇 시간 내내 작은 운동장에서 신나게 운동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연휴 둘째 날, 즉 추석 전날이 됐습니다. 그날도 수사님들은 뭔가를 분주하게 했습니다. 가만히 보니, 오전에는 몇몇 수사님들이 시장에서 장을 봤고, 또 다른 수사님들은 몇 가지 음식 등을 장만하면서 추석 명절의 분위를 냈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더니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준비한 음식 몇 가지를 식탁에 내놓았고, 자연스럽게 회식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손님인 나 또한 젊은 수사님들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먹으면서 함께 회식을 참석하게 됐습니다. 또한 원장 수사님의 표정은 마치 ‘명절은 형제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제격이지’ 하며 기분이 좋은 듯,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가볍게 술도 한 잔씩 했고, 원장 수사님은 나를 의식하는 듯 수사님들에게 노래 한 곡을 불러 보라고 정중히 요청을 했습니다. 이내 어느 수사님이 기타를 가지고 나오더니 노래 한 곡을 하는데, 조금은 구슬프게 부르는 듯했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 습니다.”

뭔가 묘한 분위기가 되었고, 노래가 끝나고 박수를 치는 분위기에서 ‘고향 생각’이란 노래를 부른 수사님은 다른 수사님을 지목했습니다. 그러자 그 수사님도 기타를 치시면서, 노래 한 곡을 구수하게 불렀습니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달려라~ 고향 열차, 설레는 가슴 안고~, 눈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 ~ 역… 다정히 손잡고 고개 마루 넘어서 갈 때, 흰머리 날리면서 달려온 어머님을 얼싸 안고 바라~ 보았네….”

그 다음으로 어느 수사님은 유명한 가수의 대표 곡을 불렀는데, 기억나는 가사 내용은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더 이상 쓸쓸해 하~ 지~ 마~ 요, 이제 나와 같이 가요’

의도하지 않았지만, 추석 전날, 젊은 수사님들이 불렀던 노래들 대부분은 고향 혹은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관련된 노래였습니다. 이윽고 짧은 회식은 끝났고 나는 방으로 가서 피정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기도하러 성당에 갔는데 그 곳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8-10-16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6

시편 51장 17절
주님,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제 입이 주님의 찬양을 널리 전하오리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