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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야” 소리에 몸만 피신… 순식간에 불길 덮쳐

강원 동해안 지역 산불 현장을 가다 /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 현장 찾아 피해상황 직접 챙겨

▲ 강원도 산불 화재로 전소된 속초의 한 신자 가정에 김운회 주교가 방문해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



"평생 살아온 집인데, 하루아침에 다 타버리다니요. 이제 어떻게 살아가란 말입니까."

지난 4~5일 강원 고성ㆍ속초ㆍ동해 지역을 동시다발적으로 급습한 '화마의 검은 손길'은 강원 지역에 사는 춘천교구민들의 가슴까지 검게 태웠다. 8일 현재 춘천교구가 집계한 신자 피해 가정은 40여 가정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5일 가장 피해가 컸던 강원 고성군 일대. 전날 시뻘건 불길이 휩쓸고 간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거리 곳곳에는 불에 탄 자동차가 앙상한 뼈만 남긴 채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었고, 한집 건너 한집이 강풍에 날아온 불씨를 끼얹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검게 그을린 채 주저앉아 있었다.

전국에서 지원을 나온 소방차가 분주히 오가는 가운데, 소방헬기 수십 대도 곳곳의 잔불을 끄기 위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날 아직 진화가 덜 된 옥계면 야산은 흰 연기를 내뿜었다. 일대를 드리운 잿빛 구름은 여전히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해안가 대로변에선 알록달록 벚꽃 대신 불에 그슬린 '검은 벚꽃'과 짙은 탄내가 취재진을 맞았다.

산불은 건조한 회오리바람을 타고 강원 지역 530ha를 집어삼켰다. 정부가 사상 유례없는 산불이 할퀸 강원 일대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지만, 주택 478채와 창고 195동을 비롯해 학교와 숙박시설, 리조트 등이 불탔고, 이재민 829명이 생겼다.


▲ 동명동본당이 관할하는 성모동산의 십자가상 뒤편까지 불에 탄 모습.


춘천교구 성당과 시설이 직접 피해를 본 곳은 없지만, 신자 가정들의 피해가 컸다. 춘천교구에 따르면, 속초시 동명동ㆍ교동본당 30여 가정을 비롯해 인제ㆍ옥계ㆍ묵호본당 피해 가정도 10여 곳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묵호본당이 관할하는 망상동 성 요셉 묘원의 일부 묘소가 전소되고, 묘비와 십자가가 일부 탔다. 옥계본당은 피해 신자 14명을 성당 옆 펜션으로 급히 대피시켰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평생 농사지으며 일궈온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신자 가옥과 펜션, 식당이 불에 타 전소했고, 신자가 운영하는 대형 물류창고가 손도 써보지 못하고 타버렸다.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는 5일 오후 일정을 취소하고, 동명동ㆍ교동ㆍ옥계본당 피해 가정을 일일이 방문해 신자들을 위로하고 피해 상황을 직접 챙겼다.

50년 넘게 살던 집이 전소된 김민경(클라라)씨 가족은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2층 가옥 앞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김 주교를 맞았다. 김씨는 "전날 '불이야' 하는 소리를 듣고, 지갑 하나만 들고 몸만 뛰쳐나왔다"며 "피신했다가 새벽에 다시 와보니 집이 이미 다 타버린 뒤였다"고 했다. 김씨의 어머니 박순옥(72)씨가 "평생 죄도 짓지 않고 살아왔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지 모르겠다. 비닐하우스와 농기구들도 다 타버렸다"며 울먹였다.

김 주교는 "얼마나 상심이 크시냐"며 "눈앞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공포에 떨었을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위로하며 손을 잡아줬다.

화마는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가 운영하는 고성군 토성면 '까리따스마태오요양원'에도 뻗쳤다. 해안가에 인접한 요양원에 불길이 다다른 것은 4일 저녁 8시 30분께. 불씨가 바람을 타고 요양원 마당과 창고까지 덮친 급박한 상황에서 수녀들은 소화기와 소방 호스를 들고 불길을 가까스로 막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요양원에 거주 중인 48명 어르신을 안전하게 시내 요양원으로 이동시켜 극적으로 인명 피해를 막았다. 기적적으로 불길은 요양원 마당에서 그쳤고, 성모상 앞 잔디와 일부 나무만 검게 탄 흔적이 남아 있다.

피신한 할머니들 틈에서 만난 장금자(메리노, 까리따스마태오요양원 원장) 수녀는 "시뻘건 불길이 막 들이닥치려 할 때에 저희는 '할머니들을 지키자'는 일념 하나로 불을 끄고, 할머니들을 대피시켰다"며 "요양원이 안전해질 때까지 외부 요양원에서 생활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속초에서 가장 큰 군부대 납품 물류창고를 운영해온 한영도(요한 사도)ㆍ김순금(율리타)씨 부부도 불에 탄 창고 앞을 지키고 있었다. 무너져내린 창고 지붕 아래로 각종 식음료와 물품들이 시커멓게 불에 탄 채 나뒹굴고 있었다. 한씨는 "나무에 옮겨붙은 불똥이 순식간에 창고를 손쓸 새 없이 집어삼켰다"며 "재산상 피해액만 20억 원 정도 될 것 같다"고 했다.

피해 교우가 있는 춘천교구 각 본당은 미사와 기도를 통해 신자 가정을 위로하고, 물적 지원을 해나가기로 했다.

김 주교는 "교구는 피해 가정 지원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라며 "큰 재난을 입었지만, 피해 신자 가정들이 다시 희망을 지니고 일어설 수 있도록 전국의 신자들도 기도와 도움으로 함께해 주시길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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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4.11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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