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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492) 보좌 신부 흉내 내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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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사목을 할 때입니다. 그 해에는 4월 달에 사순 시기와 성주간, 성삼일과 부활절, 이어서 5월달에 ‘본당의 날’과 ‘성모님의 밤’ 등을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행사가 끝나면 마음속으로 ‘석진아, 행사 치르느라 힘들었지!’하고 말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본당 내 숨은 봉사자분들의 노고가 더 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하느님께 드리며 본당에서 헌신, 수고, 봉사해 주신 분들이 계시기에 교회 공동체는 계속 성장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나는 본당 전교 수녀님과 수고해 주신 몇몇 분들을 모시고 가까운 곳에 가서 바람도 쐬고,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계획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가시는 분들에게 깜짝 이벤트를 해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놀라움과 기쁨이 두 배, 세 배가 될 것이라 생각을 했고!

그런데 내 수준에서 계획이라고 해 봤자, ‘인천 국제공항’ 근처 바닷가 선착장에서 배 타고 섬에 들어간 후, 그 섬을 차로 한 바퀴 드라이브를 한 뒤에, 식당에서 조개구이와 칼국수를 먹은 다음, 차 한 잔 마시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자신만 멋진 계획이라 생각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그때 함께 가는 일행분들 사이에서는 출발 전날까지 혼란이 있답니다. 그분들은 전교 수녀님에게 ‘어디 가서, 뭘 하고, 어떤 것을 먹는지’ 계속 물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전교 수녀님 역시, 아무것도 모르기에!

그다음 날, 몇몇 분이 차려입은 복장을 통해 작은 난리가 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봉사자분들의 패션이 조금 독특했고, 운동화를 신은 것 같은데, 옷은 조금 정장 비슷한 것을 입으셨던 것입니다. 이것 또한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분들 생각에 주임 신부님이 경양식집을 데리고 가면, 거기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할 것 같았고, 야외로 간다면 좀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운동화를 신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사람의 마음, 특히 여성의 마음을 몰라도 이렇게 모를까 싶을 정도로 후회했습니다. 다녀와서 후회하기를 ‘미리 그분들께 서울 근교의 바닷가를 간다고 말씀드렸다면, 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차림하고 오셨을 텐데!’ 나에게는 묻지도 못하고, 계획도 몰랐으니…, 소풍 자체가 스트레스였겠다 싶었습니다.

암튼 그날, 전교 수녀님과 일행분들을 모시고 내 머릿속 계획대로 진행을 했습니다. 날씨는 너무 좋았고, 차 안에서 함께 나눈 수다 또한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우리 차가 서서히 ‘인천 국제공항’ 도로를 달리자, 자매님 중 한 분이 ‘우리 외국에 나가는 건가요?’ 하며 깔깔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차는 공항 근처 바닷가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섬으로 가는 선착장 차량 대기 줄에 섰습니다. 그 섬으로 들어가는 배 앞에, 몇 대의 차는 이미 줄을 서 있었습니다. 우리를 발견한 여객 터미널 직원이 오더니, ‘어느 섬에 갈거냐’, ‘몇 시 배를 탈거냐’ 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11시 배를 탈 것이라 말하자, 직원분은 일행분들의 신분증을 달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해맑은 미소로 뒤돌아보며 말하기를,

“각자 신분증 좀 주세요!”

그러자 뒤에서 들리는 한 마디!

“아이고, 신분증요? 오늘, 신분증 안 가져왔는데. 신분증 가져오라는 말은 없었잖아요.”

아뿔싸! 일행 중에 두 분이나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직원분의 차가운 한 마디!

“신분증 없으면 배 못 타십니다.”

그 순간… 모든 계획이… 틀어져 버렸습니다.(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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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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