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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영성 이야기] (22) 성체로 오시는 당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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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한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TV 미사를 보는 동안 익숙해진 신령성체 기도문이다. 오랜만에 본당에서 영성체를 하니, 감동과 더불어 오래전의 아름다운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캐나다를 여행했을 때의 일인데, 여러 나라 사람이 섞인 그룹이라 개인행동이 어려워서 일요일이 다가오자 미사 참례에 마음이 쓰였다. 토요일 저녁, 어느 시골에 여장을 풀었는데 다음 날 아침 식사 후면 곧 떠나야 하는 스케줄이었다.

도착하자마자 그곳 지도를 얻어 성당을 찾았다. 제일 가까운 곳을 체크해 두고 주일 새벽에 혼자 다녀오리라 마음먹었다. 낯선 곳이라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성당인데, 하필이면 새벽 미사가 없었다.

문을 두드려 본당 신부님을 뵙고 사정을 말씀드리며 성체를 꼭 영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 간절함을 신부님께서 기특히 여기셨는지 제대 옆의 경당에서 나만을 위한 성찬의 전례를 거행해 주셨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영성체 후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에 바라본 풍경 또한 잊을 수가 없다. 우람한 나무들 사이의 초록색 들판은 촉촉이 내린 봄비를 머금었고 호수에는 백조가 우아한 자태로 노닐고 있었다. 하느님의 정원이 그랬을까?

게다가 갈 때처럼 뜻밖의 천사가 나타나 또다시 차로 숙소까지 태워다 주었다. 몸짓 언어 수준의 내게 일어난 그날의 일들은 아무리 되새겨 보아도 그저 기적 같기만 하다.

포콜라레 운동 초창기부터 회원들은 미사 참례를 아주 귀하게 여겼다. 더욱이 성체는 그리스도인 개개인에게 생명을 주는 양식일 뿐 아니라, 모두를 한마음 한 몸으로 묶어주는 거룩한 동아줄처럼 서로 간의 사랑을 일치에까지 이르게 하는 촉매와 같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렇게 익혀 온 덕분에 내게도 그날의 무모한 도전이 가능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착하고 성실하며 영특했던 친구가 있다.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의 대학에 합격하고 오랫동안 자취 생활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바쁘게 살았다. 그런 형편 때문이었는지 자주 미사를 놓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일상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여겼는데, 그 바쁜 사정이 운동권에서 활동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노동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 오랜 세월을 같은 일에 투신하고 있다는 성실성과 사회에서 소외받는 이들을 위한 일을 하는 그의 정의로움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리라는 기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가 유물론을 접하면서 무신론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부터 긴 토론이 시작되었다. 물론 그의 감정을 다치지 않고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글로써 나의 의견을 보냈고 그에게서도 그런 식으로 답이 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에게서 더 이상 답이 오지 않았다. 그가 아예 마음을 닫아 버린 것 같았다.

미사를 잃는다는 것은 ‘말씀’과 ‘성체’와 ‘공동체의 형제애’를 잃는 것이나 같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지냈으니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힘을 어디서 얻을 수 있었겠는가. 아픈 마음으로 성체 안의 예수님께 그를 맡겨 드리며, 성체를 영한 제가 당신처럼 그를 위한 또 다른 성체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에게 용서를 청하고는 그의 마음이 정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말이 아니라 그를 위한 사랑만이 그에게 하느님과 다시 만날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기에, 또한 하느님께서 개입하셔야만 할 일이기에, 오늘도 그를 위한 기도의 끈을 놓치지 못하고 있다.




장정애 (마리아고레띠·마리아 사업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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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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