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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 정진석] (47) 서울대교구에 부는 새 바람

사제들이 직접 뽑은 지구장, 교구 내 위상도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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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들이 직접 뽑은 지구장, 교구 내 위상도 우뚝

▲ 1998년 7월 서울대교구청 대회의실에서 임시 사제평의회를 주재하고 있는 정진석(가운데) 대주교.가톨릭평화신문 DB

▲ 임시 사제평의회를 마친 정 대주교(앞줄 오른쪽에서 네번째)가 사제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정진석 대주교의 서울대교구장 착좌식 후 간단한 식사 자리가 있었다. 사제들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몇몇 신부가 눈에 들어왔다. 30년도 더 전인 소신학교 교사 시절에 스승과 제자로 함께 지냈던 학생들이었다. 당시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던 이들이 이젠 어엿한 중견 신부가 돼 있었다.
 

정 대주교는 가까이 다가가 ‘아무개!’ 하고 옛날 소신학교 선생 때처럼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그 신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기들 이름을 기억하는 것에 매우 놀라는 얼굴이었다. 그들을 보며 정 대주교는 빙그레 웃었다. 멋쩍어하며 신부들이 와서 인사를 했다. 수십 년 만에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었다.
 

그러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젊은 신부들은 처음 보는 사제들이었다. 정 대주교는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됐다는 소식을 미리 접하고 침묵 중에 공식 발표를 기다리는 상황이었지만, 지금까지의 사목 스타일과는 다른 방법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1998년의 서울대교구는 자신이 일했던 1960년대 후반의 서울대교구나 현재의 청주교구와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구 구조나 크기, 교구 일의 종류, 상대하는 사람들 등 변수가 많아 청주와는 단순 비교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청주를 떠나기 전, 정 대주교는 소문나지 않게 조심스레 서울대교구 소속 신부를 만나 면담을 했다.
 

“서울대교구 젊은 사제들의 가장 큰 어려움과 고민은 무엇인가?”
 

그 신부는 바로 대답을 했다.
 

“서울대교구는 사제의 숫자가 많고 또 본당 분할은 한계가 있어 사제가 십수 년이 되도록 본당 주임으로 나가지 못한 채 정체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더 큰 문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 대주교는 청주에서 사목하는 사제들과는 다른 고민이 서울대교구 사제들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든 그 짐을 가볍게 해주는 것이 교구장의 역할이라 여겨 교구 활성화와 젊은 사제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됐다. 무언가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본당 신설도 가능한 한 많이 해서 젊은 사제들이 의기소침하지 않고 사목에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정 대주교는 우선 교구 조직, 특히 지구 조직을 강화해 연대성을 높이는 한편 지구에서 자발적으로 사목에 임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골똘히 사목 방안을 마련하다 보니 저녁 기도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주님께 이렇게 외쳤다. “하느님, 서울대교구에 새 본당 100개만 만들어주세요!”
 

청주에서도 사제 100명을 달라고 주님께 떼쓰던 그였다. 서울에선 본당 100개를 달라고 했다. 물론 두 가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 대주교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 대주교는 7월 16일 오전 10시 교구청 회의실에서 착좌 이후 첫 사제평의회를 개최했다. 그는 지구장 선출과 지구 대표 본당 설정 등을 골자로 한 지침을 설명하고 지구장 중심의 획기적인 교구 운영 방안을 제시했다. 사실 여태까지의 지구장은 교구 소식을 전달해주는 메신저 역할이었고, 지구 사제들의 친교를 담당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정 대주교는 획기적인 제안을 했다.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는 누구라도 피선거권을 갖고 있으니 지구의 틀을 넘어 지구장에 적합한 인물을 비밀투표로 선출해달라는 것이었다.
 

서울대교구가 마련한 ‘지구장 선출 및 지구 대표 본당 설정안’에 따르면, 15개 지구별로 소속 사제들이 교구 전체 사제를 대상으로 자신이 속한 지구의 지구장 후보를 3명씩 선출하고 교구장이 새 지구장을 추인토록 했다. 지구장 후보를 3명씩 선출토록 한 것은 15개 지구 내에서의 중복을 피하려는 조치였다.
 

정 대주교는 투표용지를 개봉하지 않고 교구청으로 들고 갔다. 이렇게 직선으로 지구장을 선출하니 그 위상이 달랐다. 마침 교구장도 지구장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교구 운영 방법을 도입하려 했던 것이다. 지구장 직선제는 당시 서울대교구 사제 공동체에 새로운 바람이자 긍정적인 바람이었다. 우리 손으로 뽑은 지구장이니 우리 뜻이나 생각을 관철해 일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갖게 됐다.
 

9월 17일 15개 지구장좌 본당이 확정ㆍ발표되면서 정 대주교가 계획한 지구장 제도가 시작됐다. 그리고 1998년 10월 22일에는 본당 부주임과 주임 대리 제도가 공포돼 1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본당 부주임은 주교좌 성당이나 지구장좌 본당의 수석 보좌로서 주임 신부 부재시 주임 직책을 대행하도록 교구장이 임명한 신부다. 또 향후 본당으로 분가할 준비를 하고 있는 본당 내 특정 구역을 전담하도록 교구장이 임명한 신부를 주임 대리로 부르도록 했다.
 

이 모든 것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구장 신부가 신부들의 투표를 통해 선임되고, 또 교구장의 권한이 지구장에게 대폭 이양된다는 점에서 지구 중심 사목 체제는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지구 중심 사목은 ‘지구별 특성에 맞는 다양한 사목의 활성화’라는 점에서도 큰 기대를 모았다. 이에 부응해 많은 지구가 지구 운영위원회를 별도로 설립하고 청소년, 선교, 사회복지, 교육 담당 신부를 임명하는 등 전문적이고 세분화된 사목을 펼쳤다. 모든 교회 구성원이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살아 있는 신앙 공동체로서 더욱 활기차게 살도록 하는 것이 정 대주교의 바람이었다.
 

사실 정 대주교가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됐다는 소식에 정 대주교는 나이도 많으니 6∼7년 교구장으로 있다가 은퇴할 것이라며 ‘과도기 같은 시기의 교구장’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청주로부터 들리는 이야기, 즉 예의 바르고 무리하지 않으며 책상에 앉아 매년 책 한두 권을 집필하는 학자라는 소문은 그러한 사람들의 생각을 더 강화시켰다.
 

그러나 정작 정 대주교는 어느 시대에서든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교구장이 되기는 싫었다. 서울대교구장의 무게감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정 대주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나이와 성격과는 반대로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다.
 

자주 요한 23세 교황이 생각났다. 수많은 추기경이 요한 23세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자리를 지켜달라고 했지만, 그는 어느 교황도 할 수 없는 일을 시작했다.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막이었다. 이렇게 사람이 생각하는 방향과 하느님이 예비하시는 방향은 전혀 다를 때가 많다.  교구의 일은 봇물 터지듯 시작됐다.


글=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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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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