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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한담] 무엇을 쫓으며 사는가 / 이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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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SNS 그룹에서 가입요청을 받았다. 20~30명 남짓한 그룹인데 나를 멤버로 초대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없어 공적인 모임 외에는 어떤 모임도 만들지 않고 살아온 지 오래됐다며 거절의 뜻을 비춰놓고, 살짝 그들의 캠프에 들어가 회원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그런데 다들 예사롭지가 않다. 화가에, 대학교수에, 대기업 임원에…. 다들 쟁쟁하다. 그에 비하면 난 깜냥도 못되는데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활동에 열심히 참여할 시간마저 없으니 재고의 여지가 없다. 정중히 사양했다. 그랬더니 거절하는 것으로 오해한 모양이다.

곡절 끝에 가입을 결정하고 몇몇이 사사로이 모이는 자리에 함께 하기로 한 날이다. 아이들 수업을 마치고 허겁지겁 달려 나갔지만 이미 약속 시간에 늦어 있었다. 그런데 차에서 내려 걷다 보니 문득 내 꼴이 눈에 들어온다. 약속시간에만 마음 쏟느라 헐레벌떡 나오다 보니 차림이 형편없었던 것이다. 내 모습이 어떤지 몰랐을 때는 씩씩하게 걸었지만 알고 나니 그대로 갈 용기가 안 난다. 신발이든, 가방이든 아무거나 하나 사서 눈가림이라도 해볼 요량으로 두어 군데 상가에 들렀지만 마땅치가 않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 가던 길을 마저 가는데 내가 보인다. 잠시지만, 그야말로 꼴값을 떨었던 것이다. 한심하다. 왜 외양에 그렇게나 마음을 쓰는가. 겉치레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 급박한 시간에 거리를 뒤지며 동동거리는가.

‘아름답다’는 말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나답다’라는 말이 가장 설득력을 얻는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때 ‘나다움’은 보증되는 것이고, 그것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아름답다’는 말이다. ‘나다움’을 간직하고, 나아가 ‘하느님의 자녀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이경숙(로사리아·수필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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