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평화칼럼] 우리를 일깨운 ‘역행보살’

윤재선 레오(보도총국장)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윤재선 레오(보도총국장)




‘역행보살(逆行菩薩)’은 불가에서 쓰는 용어다. 천주교인들에게는 낯설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법륜스님의 강연 동영상을 보다가 알게 됐다. 사전적 의미는 ‘그릇된 짓의 나쁜 과보(果報)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그릇된 짓을 하는 구도자(求道者)’이다. 비슷한 뜻의 사자성어로 ‘반면교사(反面敎師)’나 ‘타산지석(他山之石)’이 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남의 잘못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뜻인데 논어에 나오는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도 마찬가지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을 터이니, 그 옳은 바를 택해 따르고 그른 바를 고쳐가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수많은 ‘역행보살’을 만나왔다. 국정 농단의 주역과 조연들이 쏟아져나왔다. 일부러 그릇된 짓을 하고도 이를 덮어보려는 추악한 몸짓과 거짓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어제의 일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제 죽을 지경이다.” “강압적 수사에 자살을 생각했다.” 정신 분석학과 범죄행동 심리학의 이론은 이런 최순실의 심리를 명쾌히 설명해낸다. 모든 죄악과 거짓이 생생히 마음속에 기억이 나 미칠 지경이라고 말이다. 감출수록 드러나는 역설의 심리다.

또 한 명의 빼놓을 수 없는 ‘역행보살’.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이다. “누군가 오래전부터 기획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최순실 사태는 거짓말로 쌓아 올린 거대한 산”이라고도 했다. 보수 논객이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다. 새해 첫날 기습 기자간담회에서 최순실 국정 농단 관련 혐의를 부인한 것도 모자라 음모론까지 더했다.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마태 12,34)이라고 했던가?

성경에서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자기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는 이는 수치를 면하리라”, “침묵을 지키면서 지혜로워 보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말이 너무 많아 미움을 받는 자도 있다”라고.(집회 20,3.5)

‘역행보살’의 조연들은 차고 넘친다. 일일이 거론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조연들이라고 폄훼했다고 언짢아하지 마시라. 전직 대통령비서실장과 두 명의 전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차관 정도면 주연급 조연 아니던가. 특검 수사를 흔들고 헌재의 탄핵 심리를 지연시키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는 이들과 촛불민심을 종북, 좌익 기회주의 세력으로 서슴없이 매도해온 그들은 주연일까 조연일까? 그런데 주연이면 어떻고 조연이면 어떻겠는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역행보살’은 이 정도면 족하지 않은가.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들이다. 옳은 바를 택해 따르고 그른 바를 고쳐가도록 가르침을 주었으니 말이다. 당연하게 여겨온 민주주의의 가치와 주권재민, 민주공화국의 헌법 정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유권자의 잘못된 선택이 어떤 재앙을 불러오는지 깨닫도록 해주었으니 말이다. 정의롭지 못한 재벌의 소유 구조와 불공정한 경쟁, 특혜와 비리, 반칙이 우리 삶을 얼마나 고달프게 하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병폐를 치유할 연대성의 문화를 일깨우지 않았던가. 우리 삶의 영향을 주는 모든 일과 다른 사람을 무감각하게 대하도록 만드는 무관심을 극복하는 것만이 사회 변화의 첫걸음임을. 참다운 신앙은 결코 안락하거나 완전히 개인적일 수 없기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7-02-0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5

시편 59장 17절
저는 당신의 힘을 노래하오리다. 아침에 당신의 자애에 환호하오리다. 당신께서 저에게 성채가, 제 곤경의 날에 피신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