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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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칼럼] 죽음보다 강한 사랑

이창훈 알폰소(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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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2세기 교부 테르툴리아누스(155?~240?)가 한 말이다. 교회를 없애기 위해 신자들을 탄압하고 죽였지만, 죽음으로 신앙을 증언한 신자들의 피가 오히려 교회 성장의 바탕이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회 역사는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에서 모진 박해를 받으면서 유럽의 종교가 됐고, 세계의 종교로 성장했다. 한국 천주교회도 1784년 첫 신자 공동체가 출범한 직후부터 100년 동안 크고 작은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박해는 오히려 교회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됐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신앙을 증언하려고 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진리가 그 속에 있음을 깨닫고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아니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바로 진리임을 고백한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요한 18,37)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진리가 무엇이오?”(요한 18,38) 진리가 무엇인지는 그분의 가르침과 삶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분은 이렇게 가르치신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그리고 그분은 몸소 그 길을 택하셨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필리 2,6-9)

결국, 예수의 가르침과 삶은 역설의 진리다. 그 진리는 자신을 낮출 때 높아지고 자신을 죽일 때에 생명을 얻을 수 있고 자신을 내어줄 때에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사랑의 본질이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사랑은 생명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생명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하느님이 당신 아들을 통해 보여주신 사랑이다. 순교자들은 목숨 바쳐 그 사랑의 증인이 된 이들이다.

오늘날 이렇게 자신을 내어놓고 희생하는 참사랑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어머니에게서다. 여성은 남성과 사랑을 나누고 자기 몸에 태기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어머니가 된다. 잉태는 축복이다. 원치 않은 상황에서의 임신은 어머니에게 때로는 어려움일 수 있지만 수태된 생명 자체는 언제나 하느님에게서 오는 선물로서 축복의 대상이다.

새 생명을 선물이요 축복으로 깨닫는 순간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이 시작된다. 그것은 언제나 자기를 내어주는 아낌없는 희생적 사랑이다. 아기는 그 사랑으로 자란다. 그 사랑은 아기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어른이 되고 늙어서까지도 계속된다. 그것이 어머니의 사랑이다. 그 사랑은 끝없는 사랑,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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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5-0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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