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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폭력과 죽음의 문화 앞에서 / 양승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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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제 시절 소위 ‘문제아’들과 매일 만나면서 정말 가슴 아팠던 기억 하나가 있습니다. 살벌한 경쟁체제에서 뒤쳐져버린 우리 아이들이 그 상처와 수치 좌절감을 잊기 위해 본드와 가스를 흡입하던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폐해의 심각성을 강조해도 그때뿐이었습니다. 또다시 본드와 가스에 취해 흐느적거리다가 잡혀오곤 했습니다. 그때 참으로 많이 고민 했습니다. 이럴 때 범국민적인 운동이 필요하구나 이럴 때 누군가가 깃발을 드는 것이 필요하구나 생각도 많았습니다. 법 검토하고 제정하는 분들 이럴 때 뭐하나? 매일 수많은 우리 아이들 영혼이 녹아내리는데…. 본드나 가스 유통과정에서 술이나 담배 규제하듯이 강력한 규정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최근에 또 한가지든 안타까운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종격투기라고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종(異種) 그러니 서로 다른 유형의 격투기 고수들이 한판 붙는 것입니다. 물론 나름 룰이 있고 심판도 있고 애써 찾아보자면 그 안에 스포츠맨십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싱이나 축구와 다를 게 뭐있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 해도 해도 너무 합니다. 거의 맨주먹 맨 몸으로 도망갈 곳도 없는 폐쇄된 울타리 안에서 그야말로 한판 맞장을 뜨는 것입니다. 맨 주먹으로 얼굴을 마구 가격하다보니 선혈이 낭자합니다. 어떤 때 상대방을 바닥에 눕혀놓고 위에 올라탄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해 상대방을 가격합니다. 그 과정에서 실신하는 선수 뼈나 관절이 뿌러진 선수도 발생하고 경기가 끝나면 패자는 곧바로 수술실로 실려 갑니다. 승자는 짐승처럼 포효합니다. 링 바깥에 관전하고 있는 사람들은 환호성을 올립니다. 그야말로 비인간화 인간성 말살의 ‘끝판왕’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폭력적인 경기로 인해 관중들이 대리 만족을 느끼며 그로 인해 인간 각자 안에 들어있는 원초적 본능인 폭력성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눈으로 바라볼 때 ‘이건 정말 아니다’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우리 청소년들이 이런 경기를 관전하고 또 매료되면서 야기될 악영향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행히 한 용기 있는 국회의원의 문제 제기에 따라 공중파 방송에서는 이종 격투기 프로그램 방영이 금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채널을 통해 많은 우리 청소년들이 이종격투기에 빠져들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는 인간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분노나 상처 그로 인한 폭력성 공격성들이 긍정적으로 분출되기를 기대합니다. 폭력이나 분쟁을 피하고 대화와 평화를 추구합니다.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폭력과 전쟁이 아니라 희생과 용서 자기 낮춤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나 경계해야 하는 것이 바로 폭력성의 대중화입니다.

지난해 여름 방한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있었던 미사에서 하신 강론의 요지 역시 ‘인간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자’였습니다. 죽음의 문화는 천박한 자본주의에 기생합니다. 생명보다 자본을 우선시하는 배금주의가 죽음의 문화의 출발점입니다. 무지막지한 개발논리가 죽음의 문화를 부추깁니다. 생명윤리의 경시 풍조가 죽음의 문화를 확산시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결정권은 인간 각자에게 있지 않다는 절대불변의 진리를 망각하다보니 극단적인 선택도 서슴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대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의 문화에 심하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너무나 비열하고 참혹한 죽음의 문화 앞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반대의 깃발을 올려야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부터 조폭을 미화하는 영화 안보기 운동 잔혹한 격투기 금지 운동 낙태금지 운동 체벌금지 운동 폭력게임 개발 반대 운동에 적극 나서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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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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