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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은혜롭고 거룩한 땅, 유구

정필국 (베드로 대전교구 유구본당 주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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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필국 (베드로 대전교구 유구본당 주임 신부)




어머니를 유구에 모셨기에 이제 이곳은 나와 어머니에게 가장 소중한 삶의 자리가 됐다. 유구본당에 처음 왔을 때 난 고향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순진한 눈망울들, 순박한 심성, 선한 얼굴들…. 기대에 가득 찬 듯한 순박한 표정들이 친근감 있고 정겹게 느껴졌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산골짜기. 들어가도 들어가도 막다른 곳이 나오질 않았다. 이곳은 6ㆍ25전쟁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지냈다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도시의 사제관에서 어머니를 모시기엔 여러 어려움이 생기자 주교님 배려로 이 산골로 발령 났고 내겐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주일 미사 외엔 미사 참여자도 거의 없었고 신자들의 평균 나이는 70대다. 내가 평생 해 오던 사목의 틀로부터 큰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 때가 왔음을 깨닫게 됐다. 처음 부딪히는 여러 어려움으로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들면서도 이곳이 얼마나 유서 깊고, 은혜로운 거룩한 땅인지를 서서히 느끼게 됐다. 이곳은 골짜기가 깊은 만큼 그 옛날 우리 신앙 선조들이 숨어 살며 천주 신앙을 고백하고 실천하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곳이었다. 요골, 사기점골, 사랑골, 녹천리, 문금리, 조평리, 수리치골, 무성산 등등. 어느 골짜기에도 선조들의 신앙의 치열함이 배지 않은 곳이 없었다.

마을 전체가 양로원인 듯, 고요히 숨만 쉬는 마을처럼 보였지만 곧 나는 이곳으로 나를 이끈 주님의 뜻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사제로서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충격적이었던 것은, 내가 그동안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잊고 살았었다는 깨달음이었다. 돌아보니, 마음은 풍요로웠어야 할 나는 이 나이가 되기까지 주님을 위해 일군 밭이 없이 빈손으로 서 있는 듯한, 참으로 가난한 사제였다. 내겐 치매에 걸린 노모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곳에서 내 곁을 지켜 주신 어머니마저 보내고 나자 그동안의 내 삶의 모습들이 필름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사제로서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그 마음을 언제부터인가 잊어버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기보다 신자들에게 오히려 대접받는 것에 익숙해져 갔던 부끄러운 지난 날들이었다. 아무래도 이제 여기서 사목을 다시 배워야 할 것 같다. 사제의 삶을 새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주님은 왜 날 여기로 이끄시고 어머니를 데려가신 것일까?

어머니는 유구의 가난함과 소박함, 아름다움이 마치 당신 품인 듯 이곳에 나를 내려놓고서야 안심이 된 듯 당신의 평생 십자가와 같으신 막내아들의 뒷바라지를 내려놓고 훌훌히 떠나신 것이었다.

아무 보수 없이 온종일 사무실 업무를 보고 본당을 관리해주는 신자들, 성당 일이라면 언제고 달려 나와 팔 걷어붙이고 돕는 형제들, 제의방 일을 성심껏 수행하는 자매들을 보시고서야 어머니는 눈을 감으실 수 있었던 듯하다. 아마도 어머니는 지금도 당시의 아들이 남은 시간 더 훌륭한 사제로 성장하기를, 또 함께하는 형제자매들을 위해 축복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계실 것이다. 땅에서와같이 하늘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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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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