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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길상사의 성모님

백형찬 라이문도 서울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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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서울 성북동 길상사를 찾았습니다. 신록의 계절이라 경내는 싱싱한 잎들로 녹색 천국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길상사를 꼭 가보려 했던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법정 스님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고, 또 하나는 시인 백석이 무척이나 사랑했던 여인 자야의 얼굴을 보려 함이었고, 마지막 하나는 길상사 성모님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법정 스님의 흔적은 진영(眞影)과 유품이 전시된 진영각과 그 일대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전남 송광사 불일암 시절 그 유명했던 ‘파피용 의자’에 스님처럼 앉아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자야의 얼굴은 공덕비가 있는 사당 내 초상화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얼굴이지만 젊은 시절 그 예쁜 모습은 남아 있었습니다. 원래 길상사가 있던 자리는 요정 대원각이었는데, 주인인 자야(김영한)가 법정 스님이 쓰신 「무소유」를 읽고 크게 감명받아 법정 스님께 시주하여 절이 창건된 것입니다.

길상사는 절이기에 성모님이 계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길상사의 성모님’이라고 한 것은 성모님을 똑 닮은 관음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관음상 머리에서 보관(寶冠)만 내리면 영락없는 성모님입니다. 관음상을 성모님 모습으로 조각한 데에는 특별한 스토리가 있습니다.

관음상을 만든 사람은 성모상 조각으로 유명한 서울대 교수 최종태(요셉)입니다. 관음상은 법정 스님과 최 교수와의 아름다운 인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불교와 가톨릭의 친교를 위해 성모님을 닮은 관음상을 최 교수에게 부탁했습니다. 스님의 부탁을 받은 최 교수는 무척 기뻐했으나 한편으론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김수환 추기경님께 “관음상을 만들면 가톨릭에서 파문당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 일본 천주교 신자들도 에도 막부의 박해를 피해 나가사키에서 관음상을 앞에 놓고 기도했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이 말에 힘입어 단번에 조각한 것입니다.

나는 성모님과 부처님은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비슷한 점은 닥쳐올 ‘고난’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성모님은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할 때 시메온으로부터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고난받을 것을 예언한 것이었고 성모님은 그 고난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부처님도 인도 카필라의 왕자로 귀하게 태어났는데 왕궁 밖에서 생로병사를 목격하고는 깊은 고뇌에 빠집니다. 그 고뇌하는 모습이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금동반가사유상입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왕궁을 나와 출가해 고난의 길을 걷습니다.

두 번째 비슷한 점은 ‘자비의 손’입니다. 성모상의 손은 우리를 따뜻하게 받아주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부처상도 손바닥을 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미소 짓고 있는 서산 마애삼존불입니다. 이는 중생의 고통을 손으로 쓰다듬어 주는 자비를 상징합니다.

마지막으로 비슷한 점은 ‘승천’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성모님께서 돌아가시자 예수님은 성모님을 하늘나라로 들어 올리셔서 천상의 모후관을 씌워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성모님은 천상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부처님도 천수가 다하자 사라수 숲에서 모든 깨달음의 극치인 열반에 들었고 극락세계로 갔습니다. 그래서 두 분 머리 위에 후광이 밝게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길상사가 있는 성북동은 가톨릭 시설들이 많아 ‘한국의 바티칸’으로도 불립니다. 녹음이 짙어가는 이 계절에 성북동 나들이를 하며 길상사에서 성모님을 만나 뵈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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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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