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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다른 데 쓰시려고

장동민 요한 사도 하늘땅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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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한의사’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고3 때 대학입시 원서를 쓸 때도 아주 간단하게 학과를 선택했는데, 그냥 모의고사 점수에 맞춰 자로 죽 그은 선에 있는 학과를 선택했다. 그렇게 ‘S대 공대’를 지원했는데, 보기 좋게 떨어졌다. 그런데 이때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발표도 나기 전에 어머니께서 나를 불러 앉히시고는 그 대학에 낙방했다고 알려주시는 것이었다.

말인즉슨 꿈속에 수녀님 한 분이 나타나 어머니를 이끌고 그 학교 교정에 갔는데, 불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점수와 함께 붙어 있더라는 것이었다. 합격자 명단도 아니고, 불합격자 명단이라니…. 숨겼던 학력고사 점수까지 정확히 말씀하셨을 때는 약간 소름이 돋았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그 수녀님이 말하기를 “하느님께서 다른 데 쓰시려고 떨어뜨리셨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그냥 풀 죽은 아들을 위로해주려고 하셨던 말씀인 줄 알았었는데, 결국 재수를 거쳐 한의사가 되고 나니, 새삼 다시 그 말이 떠오르게 됐다.

제대 후, 한동안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마침 여러 가지 사건으로 한의사가 과잉으로 공급됐던 상황이어서, 말 그대로 ‘고학력 실업자’가 됐던 것이다. 남들보다 2년 더 공부하고 군대까지 갔다 왔는데 제대로 된 직장이 없어 서른 가까운 나이에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생활한다는 것은, 어디 가서 꺼내기도 힘들 정도로 참담한 일이었다.

사실 요새 성당 청년들도 걱정이 많다. ‘청년 실업’이라는 사회적 현상은 교회라고 해서 비켜가지 않기 때문인데, ‘성당 나와서 단체 활동을 할 시간에, 한 글자라도 더 익혀 취업을 준비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더욱이 간신히 구한 직장도 너무 열악해서 금방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위축돼 자꾸 사람들을 피하게 된다.

바로 내가 그랬다. 삼십 년 전의 내가 그랬고, 이십 년 전의 내가 그랬다. 왜 하느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시는지 원망이 앞섰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내가 무슨 잘못을 했겠지’ 하고 스스로 자책감에 허우적대기도 하고 나보다 못한 친구들이 잘되는 것을 보면서 심한 열등감에 빠지기도 했다. 하느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시기는 하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정작 일의 해결은 엉뚱하게 이루어졌다. 갑자기 성당 바로 옆에 한의원 개원 자리가 생긴 것이다. 당시 교수님 밑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사실 일을 시작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아 그만둔다고 얘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교수님의 흔쾌한 허락에 힘입어 성당 옆에 자그마하게 둥지를 틀었고, 자연스레 성당 활동도 다시 시작하게 됐다.

어린아이가 잠자기 직전 사탕을 달라고 조를 때, 정말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어떻게 할까. 사탕을 물고 잠들면 분명히 이가 썩어 아프고 고생할 것을 아는데, 그걸 알면서도 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느님은 어떠한 마음으로 우리를 힘들게 하시는 것일까. 행여나 우리를 다른 좋은 데 쓰시려고, 힘들지만 꾹 참고 계신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와 함께 아파하고 계시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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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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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13장 9절
“간음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탐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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