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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본당의 역사를 따라] 수원대리구 조원동주교좌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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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대리구 조원동주교좌본당(주임 이강건 신부)은 정자동주교좌본당과 더불어 교구의 공동 주교좌로서, 교구의 역사에 함께해왔다.

1970년대 교구가 급속도로 성장해감에 따라 기존 주교좌본당이었던 고등동본당은 교구의 크고 작은 행사를 치르기에 협소한 곳이 됐다. 이에 교구 참사회는 이런 불편을 해소하고자 주교좌본당 마련을 논의하고 과반수의 찬성으로 새로운 주교좌본당 건립을 결정했다.

당시 북수동본당은 수원시의 도시화로 관할구역 내에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분당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조원동은 수원의 첫 본당인 북수동본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어서, 별도로 공소공동체가 형성되지 않은 곳이었다. 이 조원동에 새로운 주교좌본당을 짓고자 결정한 데에는 차성화(수산나)씨가 1만4390㎡ 상당의 대지를 교구에 봉헌한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교구는 봉헌 받은 땅에 새 주교좌본당 건립 계획을 세우고, 1976년 7월 16일 조원동본당을 설립했다. 당시 본당 관할구역은 수원 북부 변두리의 미개발지역 등이 대부분으로, 신자 수는 1976명에 불과했다. 본당 신자들이 새 성당 마련을 위해 노력한 것은 물론, 당시 교구장이었던 김남수 주교가 국내외 모금활동을 통해 성당건립기금을 마련하는데 적극적으로 힘을 보탰다.

본당은 1977년 5월 18일 ‘평화의 모후’를 주보로 교구의 새 주교좌본당으로 봉헌됐다.

본당은 수원 북부 지역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신자 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빠르게 증가해 1990년대에는 1만2000명이 넘는 초대형본당으로 발전했다. 이에 1988년 율전동본당을 시작으로, 정자동주교좌본당, 조원솔대본당, 정자꽃뫼본당에 이르기까지 여러 본당을 분당시켜나갔다.

조원동주교좌본당은 20여 년 간 교구의 서품식이 거행된 사제·부제 탄생의 장소였다. 동시에 본당은 성소 요람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본당은 40여 년의 시간동안 16명의 본당 출신 사제와 20명의 수도자를 배출했다.

1997년 정자동주교좌본당이 교구의 새 주교좌본당으로 인준되기는 했지만, 조원동주교좌본당은 여전히 교구의 공동 주교좌본당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해마다 7월 9일 거행되는 평화의 모후 대축일 미사다. 평화의 모후는 본당의 주보임과 동시에 교구의 주보로 해마다 교구장과 보좌주교들을 비롯한 교구 사제단은 조원동주교좌성당에서 평화의 모후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이밖에도 본당은 교회 안팎으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성체성사달력을 배부하고 사랑의 빵을 나누는 등 성체신심 고양의 모범을 보이기도 하고, 인근 복지시설 등을 꾸준히 지원하고 선행에 앞장 서기도 했다.

본당은 지난 5월 18일 본당 설립 40주년 미사를 봉헌하고, 5259명의 신자와 함께 교구 복음화의 중심으로서 지역과 교구의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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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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