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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본당의 역사를 따라] 수원대리구 매교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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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의 확장에 따라, 1980년대부터 교구는 교세를 성장시키는 데 박차를 가했다.

교세가 증가함에 따라 수원 시내에 본당도 빠르게 증가했다.

수원대리구 매교동본당(주임 황선기 신부)은 교세 확장과 함께 설립돼 수원 남부 지역의 복음화를 활성화시킨 본당이다.

본당의 설립 준비에서 창설에 이르기까지 기간은 7개월에 불과했다. 1981년 1월 북수동본당 사목협의회가 교세 증가에 따라 분당의 필요성을 논의했고, 매교동에 본당을 설립하기로 뜻을 모았다.


교구 역시 수원 시내 본당 신설에 공감하고 있어, 당시 교구장이었던 김남수 주교는 4월 1일자 공문을 통해 매교동본당 신설을 추진하도록 지시했다. 본당은 북수동·고등동·세류동 3개 본당의 지역에서 편입됐지만, 북수동본당이 본당 설립의 주축이 됐다.
북수동본당은 본당설립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사제관 신축에 착수했다. 본당 설립이 시급한 만큼 우선 사제관 지하에 임시성당을 마련하고 성당 신축을 준비하려는 계획이었다. 같은 해 8월 1일 와리본당과 함께 매교동본당이 설립됐다.

본당은 설립과 동시에 4개 구역, 9개 반, 2개 공소를 구성하고, 1500여 명의 신자들과 함께 지역복음화에 나섰다.

설립 준비기간이 짧았던 만큼 새 성당을 마련하는 데에는 시간이 소요됐다. 사전 준비금 없이 모금과 공사가 병행되는 만큼 4단계로 구분해 시공, 1985년 6월 14일 성당을 봉헌할 수 있었다. 본당은 제대에 103위 성인 중 하나인 성 샤스탕 신부의 유해를 안치하고 전교에 박차를 가했다.

교세 면에서도 해마다 성장 추세를 보여 3차례에 걸쳐 본당을 분가시켰다. 1985년 새 성당을 봉헌하던 해에는 병점본당을 분가시켰지만 신자 수는 도리어 4000여 명으로 늘었고, 1987년에는 권선동본당에 관할 신자 1300여 명을 이관했지만, 전체 신자 수는 4500여 명으로 증가했다. 1997년에는 버드내본당을 분가시켰다.

신심활동 강화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본당은 1981년 10월 ‘성모성심’ 꾸리아를 설립하고 1983년에는 제1차 성령세미나를 열었다. 또 구역대항 연도대회, 성가대회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신심활동을 통해 신자들이 신앙을 다져나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 2002년에는 본당 부설 대건노인대학을 개교하고, 2010년에는 팔달지구의 첫 청년연합미사를 본당에서 실시하기도 했다.

또한 아나바다 시장을 열어 지역주민들과 함께 친교를 나누고, 무료진료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제공하는 등 지역 주민들을 위한 활동도 다채롭게 전개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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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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