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0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선교지에서 온 편지 - 남수단] 역시 집안에는 큰 어른이 계셔야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케냐 교황 대사님과 남수단 주바의 대주교님이 룸벡교구를 지난주 방문하셨습니다. 2011년 마쫄라리 주교님이 하늘나라로 떠나신 후 지금까지 교구장 없이 지내온 룸벡교구의 사제들과 수도자들은, 두 분의 방문이 혹시 교구장 주교 임명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면서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교구장 주교님이 계시지 않으니, 그동안 교구 내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룸벡교구의 사제들은 각기 다른 나라, 다른 수도회에서 온 선교사들이 대부분이기에 더더욱 만남과 친교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서로에 대한 관심조차 사라진 듯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룸벡교구의 사제들과 수도자들은 모두 애타는 마음으로 새 주교님의 임명을 기다립니다. 하루빨리 교구장 주교님이 임명되셔서 교구의 일치와 화합 그리고 발전을 이뤄주시는 것이 모두의 공통된 바람일 것입니다.

이날, 주바 대주교님의 주례로 야외에서 집전된 미사에는 정말 많은 신자들이 모였습니다. 지역 공무원과 정치인들도 따로 마련된 자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영성체 후 기도가 끝나자 정치인들이 차례로 제대에 올라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그냥 인사말만 하고 내려가면 될 일인데, 정치인들마다 교황 대사님의 강론보다 두세 배는 더 길게 말을 늘어놓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듣기 거북했던 것은, 마이크를 잡는 사람들마다 하나같이 ‘딩카 사람이 주교가 되길 원하니 누구를 주교로 지명해주길 바란다’라는 말로 신자들을 선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고, 미사 중임에도 불구하고 전당대회를 하는듯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대주교님께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제대 앞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자리는 대통령을 뽑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주교는 대통령이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님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주교가 된다는 것은 여기 보이는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기도하고 하느님의 응답을 기다리십시오.”

대주교님의 이 말씀에, 한층 들떠 있던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은 듯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왕을 뽑아 세워달라고 졸라대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마치 철없는 아이처럼 단순하게 생각하고 고집스럽게 행동하는 신자들을 부드러운 어조로 따끔하게 지적해주시는 대주교님의 모습을 보니, 역시 집안에 큰 어른이 계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는 2박3일의 모임을 마치고 각자의 선교지로 돌아왔습니다. 안타깝게도 교황 대사님, 그리고 대주교님과의 만남에서 내심 기대했었던 새로운 소식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룸벡교구의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진심으로 염려하고 격려해주시는 두 분의 큰 어른에게서 모두가 어버이의 사랑을 느꼈고, 새로운 힘을 얻고 돌아왔습니다. ※ 후원금은 수원교구 해외선교지를 위해 사용됩니다.
※ 후원 ARS : 1877-0581
※ 후원 계좌 : 국민 612501-01-370421, 우리 1005-801-315879, 농협 1076-01-012387, 신협 03227-12-004926, 신한 100-030-732807(예금주:(재)천주교수원교구유지재단)
※ 해외선교지 신부님들과 교우들을 위한 기도 후원 안내
-해외선교지 신부님들과 교우들을 위한 묵주기도, 주모경 등을 봉헌한 뒤 해외선교후원회로 알려주시면 영적꽃다발을 만들어 해외선교지에 전달해 드립니다.
※ 문의 031-268-2310 해외선교후원회(cafe.daum.net/casuwonsudan)
이상협 신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6-10-12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3. 30

시편 40장 12절
주님, 당신께서는 제게 당신의 자비를 거절하지 않으시니 당신의 자애와 진실이 항상 저를 지켜 주리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