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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살이 되신 말씀을 따라야지” / 주원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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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는 참 구체적이셨다. 사랑, 정의, 발전, 믿음, 영성… 등의 가치를 입에 올리기는 얼마나 쉬운가. 그런 추상적 가치를 줄줄 나열하는 사람들은 TV 토크쇼나 각종 선거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가치를 ‘실제 사는 구체적 인격’ 앞에서는 퍽 초라해진다. 사람들은, 구체적인 몸짓과 생생한 대화에 녹아있는 진리를 접할 때, 진짜와 가짜를 쉽게 구별한다.

그분의 구체적인 몸짓과 말씀은 강력했다. 세월호 희생자의 유족들은 교종과 대화하고 나서 ‘처음으로’ 위로받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따뜻하게 수용되는 느낌은 치유 과정에서 얼마나 소중한가. 교종은 시복식 직전, 카퍼레이드를 멈추고 김영오씨의 노란 편지를 받으셨다. 그리고 ‘직접’ 수단 주머니에 넣으셨다. 가슴에 노란 리본도 잊지 않으셨다.

세례를 받고 싶다는 세월호 희생자 아버지의 청을 받으시고, ‘이미 상처를 지닌 사람에게 세례를 거절하면 또 깊은 좌절감을 안겨줄 것’이란 마음에 세례를 주셨다. 교종의 세례는, 중세 유럽에서는 왕족의 일원이나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종은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당신의 귀한 세례를 베푸셨고 그분의 세례를 받은 첫 한국인은 이렇게 탄생했다.

꽃동네에서는 아이에게 꽃다발을 받고, “성모님께 드려도 되겠냐”고 물으셨다. 그는 작은 아이의 동의를 구한 다음 성모님께 바치셨다.

교종을 뵙고, 오랜 전통에 따라 무릎을 꿇고 반지에 입을 맞추려는 수도자에게는, 일어서라고 몸짓을 해 보이셨다. 당신을 위해 큰 의자를 준비한 곳은 작은 의자로 바꾸게 하셨고, 그나마 작은 이들 앞에서는 서 있으셨다. 늘 행사를 준비하는 실무자들까지 모두 챙겨주시고 눈을 맞추시고 사진을 찍어 주셨다.

이런 구체적인 몸짓에 한국은 격렬히 반응했다. 필자도 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웠다. 아, 구체적인 인격으로 사랑을 드러내는 것은 이렇게 큰 것이구나. 진리를 사는 인격이란 이런 것이구나. 인격신이란 얼마나 강한지, 2천 년 전에 예수께 사람들이 왜 그렇게 몰려들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예수님을 실제로 겪은 제자들이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요한 1,14)고 고백한 이유도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이런 새삼스런 깨달음도 모두 그분이 구체적으로 보여주신 몸짓과 호흡 때문이었다. 구체적인 몸짓으로 보여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따라할 수 있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꾸 흉내 내고 거듭하여 따라하면, 언젠가 그분처럼 생각하고 말할 수 있게 하느님이 이끌어주실 것 같았다. 특히 본받고 싶은 것은 그분의 언어다.

유명한 판화가 이철수 선생이, “한국 사람들이 교황처럼 말했으면 좋겠다”했다던데 깊이 묵상할 지점이다. 정의를 주장할 때 조차, 거칠고 상처주는 언어를 익숙하게 사용하던 우리 아닌가. 근본적인 성찰과 부드러운 언어가 퍼져나가는 한국사회와 한국교회가 될 수 있을까. 교종의 구체적인 언어를 자꾸 따라해 보아야 하겠다고 결심하는 새벽이다.


주원준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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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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