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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성모병원의 기초를 다진 의사 박병래

<4>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 기념 ‘성모병원’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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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 기념 ‘성모병원’의 탄생

▲ 초기 성모병원 전경.



1922년에 결성된 경성교구 청년연합회는 사실상 우리나라 천주교회 발전에 관한 중요한 논의의 장(場)이었다. 실제로 이 연합회에 참여했던 인사들 면면을 보면 당시 경성 시내 주요 중등학교 교장과 교사들이 많았고, 이들 모두 비교적 젊고 활기찬 인물들이어서 교회 사업을 위한 의지 또한 컸다.

무엇보다 이들은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연합회의 모든 논의와 실제 활동은 교회 정신을 실천하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따라서 당시 교회 성직자나 수도자들로부터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연합회에서 논의했던 주요 사업을 보면, 교육 지원 사업, 출판 사업, 순교자 현양 사업, 의료 사업, 그리고 기타 자선 사업 등이었다.

▲ 진료중인 박병래.



경성교구의 성모병원 설립 계획

특히 주목할 일은,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을 맞아 기념 병원을 설립하자는 의견이 바로 이 모임에서 처음 거론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계획이 가능했던 것은 역시 그때 경성의학전문학교(현재 서울의과대학) 부속 병원 내과 강사로 실력을 인정받은 박병래가 이 청년연합회의 열성적인 회원이었던 것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교구 설정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추진키로 한 병원 설립 계획은 박병래를 중심으로 이후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우선 1931년 6월 14일 병원 설립을 위한 기성회를 조직하고 ‘병원 기성회 취지서’를 발표하여 전국 천주교 신자들에게 병원 설립의 목적과 필요성을 알리고 도움을 호소했다.

이 취지서에서 교구 청년연합회는, 우선 교회 의료 사업이 교회의 영혼 구제 사업과 더불어 육신의 고통을 덜어주어야 하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 중 하나임을 밝히고 있다. 특히 이 일을 통해 비신자들을 가톨릭으로 인도하는 전교에 나서는 한편, 병들거나 임종을 앞둔 신자들을 위한 전문 교회 의료기관을 세움으로써 신자들의 자부심을 키워 주자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었다.

▲ 제9대 경성교구장 겸 성모병원 초대 이사장 라리보 주교.



물론 당시 경성교구 형편에서는 병원을 설립하는 일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1930년 10월에 발간된 교구 소식지 「별」 40호에 실린 다음과 같은 글이 그때의 어려움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우리의 형편을 생각하면 날이 갈수록 경제가 응축(凝縮)되는 이때에 큰돈이 드는 무슨 사업을 계획함이 힘에 너무 넘치고 어려움이 있음은 물론 일반이 동감할 바이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것을 침체와 낙망에만 희생하고 만다면 도리어 낙오(落伍)에 낙오를 재촉함이니, 우리는 여기에서 유일한 방법을 연구하여 부분의 힘으로 성취하지 못할 것을 단합으로 힘을 모아 노력한다면 성공할 희망이 있고도 남을 것이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교구 설정 100주년 기념 병원 건립에 모두 힘을 모으자는 결의가 엿보이는 애절한 글이다.

놀랍게도, 이런 교회 청년연합회의 결의와 호소에 신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일제 식민지 아래의 어려운 경제 사정에도 불구하고 경성에서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설립 기금이 답지하였고, 그렇게 모인 1차 성금으로 경성교구는 1935년 3월 11일 자로 당시 교구청 가까운 곳에 있는 일본인 소유의 ‘무라가미’(村上)병원을 인수하게 된다. 그 뒤에도 모금을 계속하여 개원에 필요한 병원 내부 수도, 전기 공사를 포함하여 건물 보수와 의료기기 및 약품 등을 구입하는데 당시 돈으로 총 10만 원에 가까운 기금을 확보하게 된다. 그때 건물 내 총수도공사비로 1665원이 들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결코 적은 액수의 돈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증·개축된 성모병원 규모는 약 540평 대지에 350평 정도의 2층 목조 건물이었다.



초대 성모병원장에 임명된 박병래


제9대 경성교구장이던 라리보(Larribeau) 주교는 주교관 구역 안에 병원 건물을 신축하고 싶어 했다. 물론 경비가 많이 드는 일이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때마침 무라가미병원 매각 소식을 듣고 이를 매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병원 개원을 준비하면서 라리보 주교는 새 병원의 명칭을,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하늘의 별을 보고 산과 바다를 건너 찾아갔다는 의미를 살려 ‘해성(海星)병원’으로 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병원장에 내정되어 개원 준비를 책임지고 있던 박병래는 성모님의 부드럽고 자상한 이미지를 살려 ‘성모병원’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역 제안해서 주교님도 그에 따르기로 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 교회 병원이나 개인 신자 의사들이 그들 병원 명칭에 ‘성모’라는 말을 즐겨 사용함으로써 전국 어디에서고 성모님을 생각하게 하는 ‘성모’라는 이름의 병원이나 의원들이 퍼져 있는 것을 보면 새삼 박병래의 혜안(慧眼)이 돋보인다.

무라가미병원 매입이 이루어진 이후, 1년여의 개축과 보수 공사를 거쳐 마침내 이듬해인 1936년 5월 11일에 거행된 성대한 개원식에서 박병래는 성모병원 초대 원장에 취임하게 된다. 모든 일이 그렇듯, 이렇게 중요한 교회 사업이 가능하자면 무엇보다 이 일을 책임지고 완성하고 이끌어가야 할 전문가가 필요하게 마련인데, 당시 경성교구 청년연합회에는 바로 박병래라는 유능한 의사가 있었던 것이다.



박병래는 1924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에 모교 내과에서 부수(副手), 조수(助手)를 거쳐 1935년에는 결핵내과 강사(講師)로 명성을 날리던 의사다. 지금도 비교적 경제 상태가 좋다는 30여 개 OECD 국가 중에 우리나라 결핵 환자 유병률이 가장 높아서 부끄러운 일인데,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결핵 환자가 너무 많아 ‘결핵 왕국’으로 불릴 정도였다. 실제로 그때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망 원인 중에 가장 많은 병이 결핵이었고 따라서 유능한 결핵 전문의가 꼭 필요했던 시기였는데 박병래는 이미 그때 이 분야 최고의 의사였다.

당시 국내 최고 수준의 의학 교육과 진료를 담당하고 있던 경의전 입장에서 박병래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크나큰 손실이었지만 의사이기 전에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바치기로 마음먹은 박병래로서는 대학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성모병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이 조금도 주저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성모병원 초대 원장에 취임한 박병래는 곧 의사 4명과 약사, 간호사 등 10여 명으로 의료진을 구성하여 진료를 시작했다. 동시에,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협조를 얻어 같은 병원 구내에 ‘무료 진료소’를 별도로 설치하여 가난한 환자들에 대한 무료 진료도 함께 실시했다. 병원 운영을 위한 유료 환자 진료와 함께 무료 진료를 병행함으로써 처음부터 교회가 지향하는 ‘자선’의 의미를 살리는 데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박병래가 아버지 박준호와 함께 일찍부터 교회 교육과 의료 사업 등을 논의하던 경성교구 청년연합회의 중요한 인물로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당시 교구 청년연합회의 주요 사업 계획 중 하나였던 병원 건립에 의사인 박병래가 앞장서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박병래가 초대 성모병원 원장에 임명되었다는 것은 오랫동안 마땅한 교회 병원이 없었던 우리 교회 입장에서 볼 때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한 가지 믿기 어려운 사실은, 박병래가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던 1924년은 아버지 박준호가 조선총독부 재판소 서기와 원주, 전주의 법원 서기직을 거친 뒤 경성교구에서 운영하는 남대문상업학교와 계성보통학교 교장을 겸직하는 등 교회 교육 사업의 중심에 있었던 해였고, 박병래가 성모병원 초대원장에 취임하던 1936년은 박준호가 세상을 떠난 해라는 점이다. 1924년에 아들이 의사가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지켜본 박준호는 1936년 5월 11일 아들이 성모병원 초대 원장에 취임하는 것을 보고 그해 9월 16일에 눈을 감은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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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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