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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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학술 세미나 ‘생명과 사랑-참된 인간관계의 회복을 찾아서’

육체적 사랑·정신적 사랑, 그 진정한 모습과 가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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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사랑·정신적 사랑, 그 진정한 모습과 가치는?

▲ 발제자들이 질의응답 시간에 질문을 받고 있다. 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구인회 교수, 발제자인 김중곤 교수, 이향만 교수, 민남현 수녀, 박정우 신부.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15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생명과 사랑-참된 인간관계의 회복을 찾아서’를 주제로 정기 학술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발제자들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의학적, 인문학적, 성경적, 교회적 관점에서 성찰했다. 발제를 맡은 김중곤(서울대 의대)ㆍ이향만(가톨릭대 의대) 교수, 민남현(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 박정우(가톨릭대 신학대) 신부는 한목소리로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고 강조하며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 사랑의 진정한 모습과 가치를 되짚었다. 다음은 발제문 요약.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김중곤 교수-
의학적 측면에서 바라본 사랑

심리학자 스턴버그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을 통해 “사랑은 △친밀감 △열정 △약속(책임감)으로 구성된다”고 정의했다. 이 세 가지 요소의 크고 작음에 따라 사랑을 여러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세 가지 요소가 같은 크기일 때 가장 바람직한 사랑이다.

사랑한다고 말할 때 말하는 사람마다 의미가 다를 수 있다. 행복한 사랑을 키우기 위해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의미와 사랑에 대한 기대를 알 필요가 있고 거기에 맞춰 내가 변화할 수 있는 범위를 결정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마르시아 라스웰과 노만 롭센츠는 기본적인 사랑의 유형을 여섯 가지로 나눴다. △가장 좋은 친구로서의 사랑 △논리적 사랑 △낭만적 사랑 △소유적 사랑 △이타적 사랑 △유희적 사랑이다. 대부분 경우 여러 유형이 혼합된 사랑을 하고 있으며 상대에 따라 다른 유형이 사랑을 나타낸다.

발달 심리학에서는 사랑하는 능력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통해 발달한다고 한다. 사랑도 배워 형성하는 학습으로 이뤄진다. 또한 사람들은 여자가 낭만적이고 남자들은 현실적이라고 착각한다. 실제로 과거 사회학적 연구 결과들은 거의 모두가 그와 반대되는 결과를 보고 하고 있다. 여자들은 논리적 사랑, 소유적 사랑, 가장 좋은 친구와 같은 사랑을, 남자들은 유희적 사랑, 낭만적 사랑을 훨씬 더 많이 한다. 이타적 사랑은 남녀 간 별로 차이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이향만 교수-인문학적 측면에서 바라본 사랑

사랑은 △생명의 서사 △자유 △정결 △함께 바라봄 △완전함을 향한 여정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사랑이다. 사람은 사랑하지 않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인간이 서술해온 사랑의 서사는 생명에 관한 고유한 메시지를 잘 전하고 있다. 사랑은 생명의 근원적 성향으로 인간 본질을 이루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 구약 성경의 창세기, 플라톤의 향연 등에 나타나는 사랑의 서사는 인간이 추구하는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나타내고 있다.

사랑의 자유는 한 사람을 온전히 알게 하고 온전히 변화시킨다. 사랑할 때 세상이 아름답고 모든 것이 사랑스러운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새롭게 세상을 향한 눈을 여는 것이다. 구속이 아니라 한 사람을 통해 모든 것을, 모든 이를 사랑하는 자유를 얻는 것이다. 만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으로 향한 길이 닫힌다면 그것은 참된 사랑이 아니라 서로를 가두는 애착이며 집착이다.

순결이 육체적 차원이라면 정결은 영혼의 차원을 의미한다. 정결은 순결의 내적 완성을 의미한다. 순결을 지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기 위한 준비된 삶을 의미한다. 정결은 더 나아가 서로만을 위해 자신의 성적 관계를 인격적으로 유지하고 상호 간에 고귀한 생명의 의미를 부여하는 삶이다.

민남현 수녀-성경에서 나타난 사랑-원수를 사랑하라(마태 5,43-48)를 중심으로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고와 삶의 양식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복음적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의 큰 도전이다. 특히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계명을 살아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원수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관계성에 대한 그리스도교 윤리의 핵심으로서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율법 해석의 절정이다. 예수님은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으로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당부하신다.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처지에 있던 죄인들과 관계를 맺으시고 그들이 회개해 하느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돌보셨다. 사랑의 의미를 구체적 삶으로 가르치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까운 이웃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직접적인 친분이 없더라도 결핍 속에 있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것을 내어놓고 희생할 수 있는 마음, 나아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완전함에 이를 수 있다고 하신다.

성경 저자들이 제시하는 하느님을 따르는 삶은 그분의 자녀답게 원수까지 포용하는 사랑을 사는 것이고, 이러한 실천을 통해서 하느님의 모습이 우리 안에 새겨지게 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다. 하느님 사랑의 새 계명이 인간적 본성으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그분의 사랑을 체험한 이들에게는 실현 불가능한 현실이 아니라 생각된다.

박정우 신부-교회의 가르침에서 바라본 사랑

인간의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그리스도교 핵심 교리는 사랑이다. 마태오 복음에서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율법학자의 질문에 예수님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마태 22,37-40 참조). 「가톨릭교회 교리서」도 서문에서 사랑이야말로 교리교육의 최고 목표임을 강조했다.

사랑이라는 용어는 사용하는 사람과 그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인간은 바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닮은 존재”라고 본다. 그렇기에 교회는 다른 피조물과 달리 인격 간의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의 실천을 자신의 본질적 정체성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친구들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4)고 말씀하시며 십자가 희생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셨다. 그리스도가 가르친 사랑의 의미는 자신을 희생해 타인을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는 행위다.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아가페’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단지 사랑의 대상을 갈망해 소유로 만족감을 느끼는 데 머무르는 열정적 사랑은 ‘에로스’로 구분했다.

교회는 성관계를 포함해 남녀의 열정적인 사랑을 지지한다. 그러나 남녀의 사랑에서 끝까지 충실하게 신의를 지키고, 사랑의 결실인 새 생명을 책임 있게 양육할 수 있는 장소는 “자유롭고 의식적으로 선택된 부부 사랑의 계약인 혼인뿐이다”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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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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