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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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12) 리고르 왕과 탈롱에서 만나다

‘불교 땅’에 성당 건립 희망 안고… 죽을 고비만 수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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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땅’에 성당 건립 희망 안고… 죽을 고비만 수차례

▲ 오늘날 나콘시탐마랏이라 불리는 리고르는 태국 남부 중심 도시로 불교가 성행하고 있다. 사진은 리고르의 유명한 절인 매차오 유 휴아 사원.태국관광청 제공

▲ 포구에서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리고르 바닷가의 요트들. 태국관광청 제공


탈롱으로 순방 온 리고르 왕 예방

“리고르 현지에 성당 짓겠다” 요청

“샴 왕의 동의 필요” 답변 얻어내

 

태국 남부 중심도시 리고르 도착

“절·승려 말곤 볼 게 없다” 기록

여행 도중 늪에 빠지는 등 고생

17일간 폭우, 일행 부상까지 겹쳐



브뤼기에르 신부는 탈롱(Thalon, 오늘날 파탈룽)에서 마침 이곳을 순방 온 리고르 왕을 예방할 수 있었다. 300명의 호위병과 25명의 후궁을 거닐고 등장한 리고르 왕은 허리에 천을 둘렀을 뿐 다른 옷을 입지 않았다.
 

왕은 브뤼기에르 신부를 보자 “프랑스인이군”이라고 하면서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 순간 그 자리의 모든 이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고 브뤼기에르 신부 홀로 서 있었다.
 

브뤼기에르 신부는 왕에게 “폐하께서 저의 선임자인 페코 신부를 환대하신 사실을 유럽에서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페코 신부와 같은 사명을 받고 고인이 된 그의 자리를 채우려고 파견된 사람입니다. 저는 폐하께 개인적으로 경의를 표하고 폐하의 강력한 보호를 받고 싶은 마음에서 바닷길 대신 육로로 샴까지 가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한 후 샴 대사가 리고르 왕에게 쓴 편지를 전했다.
 

왕은 브뤼기에르 신부의 말에 크게 기뻐하면서 “리고르에서 방콕까지 가는 배 한 척을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왕은 관리들에게 “신부를 지극 정성으로 모셔 길에서나 리고르에서 부족함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브뤼기에르 신부는 이어 왕에게 “리고르에 성당을 지을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했다. “폐하께서는 페코 신부가 리고르를 지나갈 때 그를 초대하시고 리고르에 정착하는 것을 허락하시고 성당을 세우는 일을 돕겠다고 하셨습니다. 페코 신부는 폐하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으나 그만 죽는 바람에 이를 실현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제가 폐하의 뜻을 받들고 싶습니다.”
 

왕은 난처해 했다. 그의 왕국에 성당이 전혀 없었던 만큼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브뤼기에르 신부는 분위기를 살핀 후 왕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왕은 얼마후 신하를 보내 브뤼기에르 신부에게 “청을 허락하길 망설인 데 대해 언짢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가까운 시일에 방콕에 가서 샴 왕과 이 문제를 논의하고 그가 동의한다면 자신이 방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알렸다. 당시 리고르는 방콕 왕조 라마 3세(1824~1851)의 통치를 받고 있던 속국이었다.
 

브뤼기에르 신부는 이 일에 절대 실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리고르에 성당을 짓는다면 복음이 크게 전파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는 “리고르 왕이 방콕에 오면 샴대목구장 플로랑 주교와 함께 라마 3세를 찾아갈 것”이라고 파리외방전교회 총장 랑글루아 신부에게 보고했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려는 그의 성격과 한 번 마음 먹은 것은 끝까지 해내고 마는 그의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리고르 왕에 대해서도 “신앙이 없는 것 말고는 훌륭한 분”이라고 평가했다. “왕은 호감을 주는 인상이고 선의와 자애가 넘치는 분입니다. 왕은 상냥하고 인기가 있으며 외국인들을 반깁니다. 왕은 정의를 실천하는 분이라 노동자들이 정당한 임금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는 불의와 사기를 엄히 벌합니다. 그는 자꾸 여러 지방을 순시하고 요새를 세우며 땅을 개간합니다. 왕국은 상당히 크지만, 인구는 많지 않습니다. 백성은 왕을 사랑하고 리고르 왕국에 오는 외국인들은 왕을 존경합니다.”
 

마침내 브뤼기에르 신부 일행은 태국 남부의 중심 도시인 리고르(오늘날 나콘시탐마랏)에 도착했다. 여행 도중 중국인 신입 교우가 강을 건너다 악어에게 물려 죽을 뻔하고, 안내자가 길을 잃어 일행 모두가 늪에 빠져 진창 속에서 2시간 이상 허우적대기도 했다.
 

배를 타고 리고르에 도착했을 때 샴 대사가 포구에서 그들을 맞았다. 대사는 화려한 격식을 갖추고 일행이 묵을 집으로 안내했다.
 

대사는 브뤼기에르 신부에게 사방이 막힌 초가를 제공했다. “마음대로 숨을 쉴 수 있는 방을 달라”고 브뤼기에르 신부가 요구했지만, 대사는 “큰 인물은 천한 사람들 눈에 띄지 말아야 한다”며 청을 거절했다. 그는 대사가 떠난 후 벽을 둘러친 천을 조금 떼어내 공기구멍을 만들고 나서야 쉴 수 있었다.
 

리고르 도착 후 17일 동안 비가 계속해서 내렸다. 그 와중에 샴 대사가 여행하다 사고를 당했다. 대사를 태운 코끼리가 그를 땅으로 메치는 바람에 허리를 다쳤다.
 

불순한 일기와 방콕까지 동행하기로 한 샴 대사의 사고로 브뤼기에르 신부는 리고르에서 발이 묶이고 말았다.
 

브뤼기에르 신부는 리고르에 머무는 동안 불교의 땅인 이곳을 여기저기 둘러봤다. 그는 “절ㆍ비구ㆍ비구니들 말고는 볼 게 없다”고 그의 여행기에 적었다. 그는 손가락을 이용해 음식을 먹는 이곳 식사 예법을 흥미롭게 기록했다. “독수리 발톱을 닮은 손톱으로 쇠고기를 잘라 먹습니다. 이들은 손톱을 붉게 물들입니다. 손톱이 길고 이가 검어야 미인으로 꼽힙니다.”(브뤼기에르 신부가 1827년 6월 20일 방콕에서 랑글루아 신부에게 보낸 편지)
 

브뤼기에르 신부는 샴 대사가 거동할 만큼 회복되자 1827년 5월 20일 배를 타고 리고르를 출발해 방콕을 향해 여행길에 올랐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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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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