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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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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14) 이천기 마르코(서경대 명예교수)

가시밭길 인생도 주님이 함께하시니 어느새 꽃길로

▲ 서경대 이천기 명예교수가 봄꽃이 활짝 핀 벤치에 앉아 과거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께 의지해 열심히 살았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 1958년 고등학생 때의 이천기 교수.

▲ 세례식을 집전하는 오기선(오른쪽) 신부와 복사로 오 신부 옆에 서 있는 이천기(가운데) 교수. 이천기 교수 제공



보훈의 달인 6월, 아물지 않은 전쟁의 상처를 안고 '예수 성심'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분을 만났다. 6ㆍ25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거리의 천사(고아)가 고학(苦學)으로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됐다. 살아온 길이 너무 아파 차마 물어보기조차 어려운 그의 삶의 궤적(軌跡)은 전설이 됐다. 눈물을 참으며 인터뷰를 이어갔지만, 그의 가슴에 서리서리 쌓인 아픔을 모두 꺼낼 수는 없었다. 눈물겹지만 아름다운 여정의 주인공, 이천기(마르코) 서경대학교 명예교수다. 믿고 의지할 곳은 오직 하느님뿐이었다. 정직하고 착하게 살면 하느님이 도와주신다는 믿음 하나로 견뎠다. 주님만이 구원이고 힘이고 굳셈이었다. '신은 인간에게 십자가를 주셨지만, 어깨도 함께 주셨다'고 말한다. 열심히 살아도 '고아'라는 이유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편견이 가장 무거운 십자가였다. 우리가 만든 편견과 차별의 십자가를 짊어지셨던 주님께서는 그에게 과연 어떤 '어깨'를 주셨던 것일까.

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



▶국제경영학을 전공하셨는데, 선택한 동기가 있으신가요.

제가 형편이 너무 어려우니까 장학생 기회가 주어져서 경영학이 뭔지도 모른 채 지원했습니다. 국제경영학은 두 나라 이상에서 전개되는 경제활동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중국의 사드 보복 문제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데, 사드는 안보 문제예요. 중국은 우리의 경제 파트너이기 때문에 인내하면서 외교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봅니다. 국내적으로는 국익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국민적 합의를 이뤄야 합니다. 한미 FTA 재검토 문제는 한미 간에는 안보동맹 등 특수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데, 전면적인 재검토 단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새 정부의 최대 과제 중 하나가 일자리 창출인데요. 어떤 해법이 있을까요.

지금 세계 경제가 살아나는 추세를 보입니다. 일본과 미국, 유럽 모두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실업률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정보와 IT산업을 중심으로 반도체 수요가 모두 늘어나고 있는데 사실 장치산업이에요. 자동화를 많이 하니까 투자는 늘어나는데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 거죠. 또 자동차 산업과 석유화학업계의 경우는 국내 투자는 안 하고 해외 투자에 주력하고 있는데 이것을 해결하는 게 초미의 과제입니다. 요즘 많이 이야기하는 4차 산업혁명은 IT산업의 연장으로 일자리가 필요한 산업이 아녜요.



▶최근 자서전 「천사의 발자국」을 내셨는데, 계기가 있으셨나요.

6ㆍ25 전쟁 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8살 때 사촌 형과 놀다가 지뢰밭에 모르고 들어갔는데 나는 지나갔고 뒤에 오던 사촌 형이 지뢰 선을 건드려 형은 산화했습니다. 당시 전재고아(戰災孤兒)들을 '집 없는 천사', '거리의 천사'라고 불렀는데요. 자고 나면 천사들의 얼굴이 바뀌고 너무 힘들어 천사들이 도망가던 그 시절에 저도 험난한 천사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천사의 발자국이 아닐까 해서 이름을 붙였고요.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나를 우연히 만나 도와주신 많은 은인 분의 권유가 있어 보답하는 마음이 있었고요. 요즘 너무 쉽게 살아가려는 젊은이들에게 도움도 될 것 같아서 썼습니다. 또 하나는 손주들에게 할아버지가 살아온 인생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와 어깨를 함께 주셨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인간은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존재 같아요. 신은 인간에게 고통만 준 것이 아니라 감당해서 지고 갈만한 능력도 주셨는데 그것이 주님의 어깨라고 생각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어깨라는 희망이 있으니까 지고 가라'고 해석했고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게 큰 힘이 돼준 말씀입니다.



▶어떤 십자가가 가장 무거우셨어요.

이 땅에서 어린 시절에 부모 없이 고아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부모 없이 열심히 살았으면 그게 더 장한 것인데 그것을 인정하는 사회가 아니더라고요. 단지 부모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편견이 심했습니다. 해마다 사순시기가 되면 제가 살았던 천사의 집을 순례하는데요, 안산 허수자양원에 들어가자마자 거리의 천사들과 공동으로 세례를 받았어요. 보육원은 아주 배고픈 곳인데 어느 날 밤에 너무 아파서 보건소에 갔더니 늑막염이라고 약을 줬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미군 지프를 얻어 탔는데 아프다고 하니까 저를 수원 고아병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이었는데요. 저는 혼자 수원 북수동성당에 몰래 다녔습니다.



▶보육원에서 혼자 성당 다니는 게 힘들지 않으셨나요.

미움을 받아도 나는 천주교 신자니까 그냥 성당에 간 거예요. 어릴 때 선생님이 읽어주신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속 주인공이 마치 나 같아서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요. '천주님은 살아 계셔서 정직한 아이를 도와주신다' '우리 엄마도 살아 있으면 그 아이처럼 힘들 때 성당을 찾아가라 하셨을 것이다'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어요. 성당 다닐 때 소원이 남들처럼 헌금 내고 복사를 하는 것이었는데요, 수원에 있을 때는 복사를 못 했고요. 미군들이 준 초콜릿을 팔아서 전 재산이던 4000원을 북수동성당에서 통째로 헌금 주머니에 넣었어요. 제 생애 첫 봉헌이었죠.

▶학교에 가는 소원은 어떻게 이루셨나요.

보육원에서 권투를 했는데 상대방 아이가 코피가 났습니다. 원장에게 끌려가서 엄청나게 혼나고 쫓겨나서 안산으로 다시 왔습니다.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에 지리도 모른 채 무작정 평택으로 도망갔어요. 하지만 보육원은 없고 남의 집 처마 밑에서 하루 자고 다음 날 버스를 탔는데 처음 와보는 대전에 도착한 거예요. 11살 때인데, 무조건 찾아간 곳이 오기선 신부님이 운영하던 충남 애육원이었어요. 거기서 1년 동안 목공소에 다니다가 신부님이 학교를 보내줘서 6학년에 들어갔습니다. 공부를 꽤 잘했는데 비록 빈주먹이었지만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대학에 가기로 하고 애육원을 탈출해 대전 공락원에 갔습니다. 거기서 대전고등학교에 입학해 다니는데 5월에 오기선 신부님이 저를 찾으러 오셨어요. 도망간 고아를 보육원장이 찾으러 온 예는 대한민국 역사에 없을 겁니다. 신부님의 사랑에 정말 눈물을 많이 흘렸죠.



▶이후 또 한 분의 스승이고 은인이신 두봉 주교님을 만나셨죠.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났는데 복사를 하면서 주교님과 함께 우리말 공부를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저를 많이 생각해 줬어요. 주교님 방에 있는 책들을 모두 빌려다가 정말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사춘기 시절에 두 분의 신부님이 제 옆에 없었으면 저는 그냥 무너졌을 겁니다. 제게는 방법이 없잖아요. 주님의 어깨가 되어주신 신부님들 때문에 자서전도 쓰게 된 것입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ROTC 장교로 임관하시게 됐는데, 졸업식 날 혼자 성당에 가셨다면서요.

저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고 졸업장을 주신 분은 하느님인데 파티보다는 그분께 가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감사 인사드릴 때 눈물만 줄줄 흘렀어요. '나를 왜 살려주셨습니까?' 이 말만 나오는 거예요. 하느님이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오셨는데 내가 정말 하느님 뜻에 벗어나는 삶을 살면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이죠. 바르게 살라고 나를 끌어오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 대폿집에 가서 가장 그리운 누님과 정신적으로 술 한 잔 나눴습니다. 부모님께서 제가 공부하기를 바라셨다는 유언을 전해준 친누님이거든요.



▶전역하고 방송국 PD로 취직하셨어요.

학자의 꿈을 안고 전역했는데 다시 고아 신분으로 돌아온 거예요. 돌아갈 집도 잠잘 곳도 없잖아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래서 학자의 꿈은 일단 접기로 하고 직업을 가지려고 KBS 공개 모집을 보고 PD로 입사했습니다. 공채 입사자로 미운 오리 새끼 시절도 겪었지요. 살아남으려면 실력으로 인정을 받아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잘못된 농약 사용으로 농가가 굶어 죽게 된 농촌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전국 네트워크로 방송되자 피해 농가들이 엄청난 보상을 받았어요. 그런데 계속 내 속에 감춰져 있던 학문의 꿈이 꿈틀거리는 거예요. 안주하면 물 건너갈 것 같아 사표를 냈고 가장의 책임을 위해 다시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부에 들어갔습니다. 없다가 생긴 가족들 아닙니까? 나에겐 전부이고요.

▶가장 힘들었을 아내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있는지요.

마음으로는 한없이 고마운데 "고맙다" 이런 말을 제가 잘 못해요. 방송국 사표 낼 때 아내에게 가장 미안했어요. 빈손 가정을 일으켜 준 게 아내입니다. 아이들 키우고 공부시키고 아내가 다 했습니다. 아내는 성당에 참 열심히 다녀요. 교리신학원을 두 번씩 다녔고요. 선교사와 교리교사 자격이 있고 정말 성실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성당에서 한국천주교회사 강의도 하는데요. 한국 천주교회사를 압축해 알려주는 데 교수인 나도 놀랄 정도로 잘합니다. 우리 집이 이만큼 설 수 있는 것은 모두 아내 덕분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낙담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은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내가 믿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밖에 없는 거예요. '신은 존재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을 도와준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내 소원인 학교 가는 길도 하느님께서 이끄셨고 '배고프지 않게 해주세요' 기도하면 밥을 내려주는 게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저에게 하느님은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분, 나의 절대적인 존재이십니다. 많은 은인들이 어떻게 제 곁에 왔을까요. 하느님께서 보내준 분들이라고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이 물을 마셔라'라고 안 하시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물을 주는 거예요.



▶고난의 길을 걸어오셨는데, 요즘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해 주세요.

어려운 시대는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있습니다. 인간 앞에는 늘 어려움이 있지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갔으면 합니다. 지금 일자리가 없다고 난리지만 당시에는 기업도 없던 시절인데 무슨 직장이 있었겠습니까. 새로운 시대, 새로운 어려움이 있지만 주어진 인생을 성실하게 살다 보면 길은 열리는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 인생에 왕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성실하게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TV 방송 시각 : 6일 오후 7시, 7일 오후 11시



[기사원문 보기]
[평화신문  2017.05.31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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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말씀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7-66.80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80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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