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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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사업 소명 다한 ‘도티기념병원’ 아름다운 퇴장

35년간 295만 명에게 인술 펼쳐, 29일 미사 봉헌하고 도티씨 가족에 감사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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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도티기념병원 개원식에서 알로이시오 슈워츠(왼쪽) 신부와 관계자들이 이야기 나누는 모습.

▲ 1982년 도티기념병원 개원식에서 알로이시오 슈워츠 신부와 관계자들이 참석한 모습. 도티기념병원 제공


▲ 도티기념병원을 찾은 환자가 수녀와 상담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영혼 하나하나는 너무도 소중합니다. 소수의 일부 아이들만 돌보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거리의 다른 아이들을 결코 내버려둬선 안 됩니다.”(알로이시오 슈워츠 몬시뇰)

1950년대 말 6ㆍ25 전쟁의 상흔으로 모두가 어렵고 궁핍했던 시절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살겠다’며 한국을 찾은 알로이시오 슈워츠(Aloysius Schwartz, 한국명 소재건, 1930~1992) 몬시뇰은 서울과 부산에 소년의 집ㆍ소녀의 집을 건립하며 ‘거리 아이들의 아버지’가 됐다. 1982년엔 도티기념병원을 건립하며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의료 사업을 시작했다. 병원을 운영해온 마리아수녀회는 “가난한 이들을 최고로 대우하라”는 알로이시오 몬시뇰의 정신을 35년간 이어왔다.



문 닫는 도티기념병원

서울 은평구 백련산 자락에 자리한 도티기념병원을 찾았다. 소박하고 고요한 병원 분위기에서 알로이시오 몬시뇰의 생전 삶과 영성이 묻어난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진료실과 복도에 환자가 한 명도 없다.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외국인 환자와 산모들로 북적대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때마침 병원문을 나서던 한 환자는 “병원이 곧 문 닫는지 모르고 찾아왔다”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지난 35년간 도티기념병원은 외래 환자 210만 명, 입원 환자 85만 명을 치료한 ‘돌봄과 치유, 인술의 현장’이었다. 돈이 없어 병원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던 산모들이 줄을 이어 그간 8400여 명의 새 생명이 이곳에서 탄생한 ‘생명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오랫동안 ‘생명’, ‘사랑’, ‘인술’, ‘영적 돌봄’의 장소였던 도티기념병원이 29일 문을 닫는다. 환자 수가 급격히 줄었고 의료 환경이 변화해서다.

“알로이시오 몬시뇰께서 설립하신 병원은 그야말로 가난한 이들의 병원이었습니다.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하고, 갈 곳 없는 이들의 질병을 모두 고쳐주는 곳이었죠. 문을 닫기로 한 것은 과거보다 나아진 한국의 의료 환경과 이로 인해 우리 병원 사업의 목적이 소명을 다했기 때문입니다.”(마리아수녀회 서울분원장 권 클라라 수녀)

도티기념병원은 알로이시오 몬시뇰을 지원하고 후원했던 미국인 사업가 조지 도티씨가 100만 달러를 기부해 건립됐다. 고아, 행려인, 어르신, 가난한 이들까지. 영양실조, 피부병, 결핵, 홍역, 간염에 시달린 수많은 사람이 병원에서 무료로 새 삶을 되찾았다.

권 클라라 수녀는 “1970~1980년대 돈 없고 어려운 사람들은 오전에 일반 병원을 찾아가면 저녁 늦게 겨우 진료를 받을 정도로 의료 환경이 무척 열악했다. 도티병원도 수많은 환자 가운데 더 어려운 이들을 선별해 가며 진료할 정도였다”면서 “오늘날 어려운 이들을 위한 병원 사회사업이 점차 확대되고, 각종 의료보험 혜택이 나아지면서 내원하는 환자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고 했다.

아울러 마리아수녀회를 물심양면 지원해온 외국의 은인들이 한국보다 더 열악한 나라를 돕기로 하면서 수녀회는 그간 병원 운영의 존속을 두고 오랜 기간 고민해 왔다. 병원은 연간 35억 원의 운영비가 들었지만 수익을 따지지 않고 운영해 왔다. 그럼에도 2000년대 들어 급증한 외국인 환자들을 성심성의껏 진료해 왔다. 가까운 중국, 베트남, 태국인부터 중동 시리아 난민에 이르기까지 의사와 수녀, 직원들은 번역기까지 동원해가며 13년간 99개국 환자 4만 7000여 명을 치료했다. 병원은 2010년 아산상 대상을 받기도 했다.



35년간의 사랑 이야기

병원이 쓴 ‘인술의 역사’는 일일이 전하기 힘들 정도다. 초창기 병원은 2500여 명에 이르는 소년의 집(현 시립 꿈나무마을) 아이들과 1500여 명의 갱생원(현 은평의 마을) 환자 진료만으로도 연일 북적였다. 서울대, 이화여대, 가톨릭대 등 국내 유수의 대학 출신 의료진은 “도시 영세민들에게 무료 의료혜택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한다”는 알로이시오 몬시뇰의 뜻에 따라 인술에 전념했다. 각종 암환자, 백혈병 환자도 돌봤다. 의료진은 늘 최고의 의술을 펼쳤다.

병원 설립 때부터 35년간 진료해 온 이창효(미카엘) 소아과 과장은 “알로이시오 신부님은 모든 환자를 구분 없이 치료해 줄 것을 늘 강조하셨고, 수녀님들은 초창기 병원 살림을 모두 꾸려나가셨다”면서 “미혼모 아기, 아픈 신생아, 청소년까지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며 의사로서 보람있는 생활을 했다”고 전했다.

의료진과 수녀들은 서울 시내 산부인과를 찾아다니며 낙태하려는 산모를 병원으로 데려왔고, 방치된 신생아까지 데려와 인큐베이터에서 살려냈다. 초창기 수녀들은 어렵고 가난한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병원을 알렸다. “공짜가 어딨느냐”며 의심하는 이들도 와서 장기간 치료를 받았다.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성인이 돼 ‘자원봉사자’와 ‘후원자’로 찾아왔다. 한달 치 월급을 선뜻 내놓고 간 환자, 이곳에서 백혈병을 완치하고 간병인으로 활동한 봉사자, 꾸준히 병원을 찾아 고마움을 전하는 사람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에게 도티병원은 ‘사랑의 병원’으로 남아있다.

2012년 도티병원은 지역 병원들에게 고발을 당했다. 도티병원이 무료로 운영하니 지역 병원들 살림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에서다. 도티병원은 환자에게 본인 부담금을 받으라는 행정명령을 받았다. 그럼에도 병원은 어려운 이들을 돌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35년간 단 한 번의 의료사고 없이 15일 필리핀 산모의 아기를 마지막으로 받아내며 입원 환자 진료를 마무리했다. 도티기념병원은 이후 시립 꿈나무마을의 청소년 500여 명을 위한 ‘의무실’로만 운영할 계획이다.



고마운 분들

병원에서 사도직을 수행해온 수녀들은 “35년간 열심히 진료해 주신 선생님들과 직원 55명, 후원자들 모두 ‘도티기념병원의 천사들’이었다”며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신 마리아막달레나 수녀는 “병원이 문을 닫는다니까 ‘대체 왜 문을 닫느냐’며 전화 문의가 잇따랐고,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병원 운영을 계속해 달라’고 하는 이들도 많았다”며 “그야말로 가장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 인술을 펼쳐주신 의료진과 직원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정 프란치스카 수녀는 “다른 병원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으면서도 생명을 지키고 그리스도 사랑을 전해온 그간의 활동에 보람을 느낄 따름”이라고 했다. 권 클라라 수녀는 “알로이시오 몬시뇰의 뜻을 이어 마리아수녀회는 더욱 어렵고 가난한 이들을 찾아 새로운 사도직을 구상할 계획”이라고 했다.

도티기념병원은 29일 오후 3시 서울 은평구 마리아수녀회 서울분원에서 서울대교구 사회사목 담당 교구장대리 유경촌 주교 주례로 35주년 마지막 미사를 봉헌한다. 이날 도티씨 가족을 비롯한 은인들에게 감사패를 수여한 뒤 병원 문을 닫는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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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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