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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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떠나는 하늘 소풍 ] 상. 아름다운 이별, 가정 호스피스

생의 마지막 나날들… 집에서 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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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에 35명, 1년에 27만 명. 우리나라에서는 2분마다 1명씩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삶을 마무리하는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죽음을 앞둔 사람 중엔 중환자실에서 약물과 씨름하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편안하게 눈을 감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까.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8월부터 시행된다. 이에 가장 익숙한 공간인 집에서 임종을 맞는 ‘가정 호스피스’를 살펴보는 기획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8월 시행되면 호스피스 대상이 기존의 암 환자 외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로 확대된다. 병원과 가정에서 암 외에 3가지 질환 환자들도 호스피스를 받을 수 있다. 그래픽=문채현 서울 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결혼 50주년을 맞이한 환자와 남편. 서울 성모병원 호스피스센터 제공


임종자들의 벗, 가정 호스피스

6월 5일 경기도 포천 모현센터의원 유리라(젬마,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가 김길순(82) 할머니 집을 방문했다. 위암 말기인 김 할머니는 앞으로 살날이 두 달 정도 남은 말기 환자다. 가정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인 유 수녀는 5월부터 할머니의 집으로 호스피스 방문을 하고 있다.

김 할머니 집은 모현센터의원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할머니는 햇살이 잘 드는 거실에 누워 지낸다. 집안에는 할머니 눈길이 닿는 곳마다 자녀와 손주들 사진이 붙여져 있다. 할머니가 자녀들을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볼 수 있도록 유 수녀가 제안해서다.

유 수녀는 김 할머니 건강 상태부터 확인했다. “혈압은 지난번이랑 같아요. 밥은 얼마만큼 드셨어요?”

밥은 얼마나 먹었는지, 잠은 얼마나 잤는지 확인하는 것은 말기 환자에게 중요한 일이다. 혈압이나 혈당 체크부터 상처 치료, 통증 조절 등 호스피스 병원에서 이뤄지는 일들이 모두 환자의 집에서 이뤄진다.

살갑게 자신을 돌봐주는 유 수녀에게 김 할머니가 빵이 있는 곳을 손으로 가리킨다. “저기 빵 있으니까 잡숴.” 괜찮다는 유 수녀와 그래도 뭐라도 먹이려는 김 할머니 사이에 잠시 정겨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유 수녀는 “손님이 아니니 빵 같은 거 안 주셔도 된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김 할머니는 “우리 집에 오면 모두가 손님”이라며 연신 빵을 권한다. 가정 호스피스에선 환자가 집에서 의료진을 맞게 되니 의료진은 ‘우리 집’에 온 ‘손님’이 된다.

유 수녀는 김 할머니 몸 상태만 챙기는 게 아니다. 할머니 마음과 기분까지 살뜰히 살핀다. 김 할머니가 가장 아끼는 막내아들이 다음날 온다는 것을 안 유 수녀는 막내아들 이야기를 꺼내며 물었다. “아드님 오시면 무슨 얘기 해주실 거예요?” 김 할머니는 “사랑한다고 해주겠다”고 했다. 유 수녀가 “우리 아들 자랑스럽다 이런 얘기도 해주셔야죠”라고 한껏 부추기자 주름진 김 할머니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가족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하기’는 유 수녀가 지난 방문 때 김 할머니에게 내준 숙제다.

호스피스 의료진은 환자와 가족이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다. 서로 사랑을 표현하고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는 풀면서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모현센터의원 정극규 의료원장은 “호스피스는 ‘편안한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인간답게’ 살다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가정 호스피스는 집에서 임종을 맞도록 돕고 있기에 환자와 가족들은 심리적으로 더 안정될 수 있다. 내가 마지막까지 ‘나’로 있을 수 있는 곳은 바로 내 집이기 때문이다. 김 할머니는 가족들과 25년 동안 살았던 집에서 가족의 보살핌과 의료진 방문을 받으며 임종을 준비하고 있다.

▲ 서울 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결혼 50주년을 맞이한 환자와 남편.서울 성모병원 호스피스센터 제공


호스피스 돌봄 늘어나야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 결과 우리나라에서 치료비가 급증하는 시기는 ‘사망 직전’이다. 환자는 더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데도 CT, MRI 등 각종 검사와 심폐소생술 등을 받게 된다. 치료 효과 없이 투병 기간만을 연장하는 ‘불균형적’ 의료 행위는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부담만 지울 뿐이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고통을 줄이면서 남은 시간 동안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가 바로 ‘호스피스’다. ‘균형적’인 의료 처치와 함께 통합적 돌봄을 제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78개 의료기관에서 호스피스를 제공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암 환자 중에서는 15만이 호스피스 돌봄을 받고 세상을 떠난다.

보건복지부 공공정책관 권준욱 국장은 “우리나라는 의료 패러다임 변화를 겪고 있다”면서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환자’ 그 자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어 “통합적 돌봄이 이뤄지는 호스피스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려면, 의대 교육부터 병원 문화까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호스피스 제도는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상태다. 새 법이 시행됨에 따라 8월 4일부터 호스피스 대상이 암 환자 이외에도 만성질환(후천성 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 환자로 확대된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서울 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이용주(요한 세례자) 교수는 “호스피스는 인간의 기본 권리”라며 “죽음 앞에서 누구나 편안하고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말기 상태에서 치료를 받을지, 호스피스를 받을지 선택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불필요한 검사나 치료를 줄이고 일상생활을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제도와 인식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유리 기자 lucia@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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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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