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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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20) 박승찬(엘리야) 가톨릭대학교 성심대학원장

기도와 묵상으로 ‘중세의 보화’ 전하는 인문학 명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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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승찬 교수는 “하느님께서는 다가서면 물러나시고 멀어지면 기다려 주시는 분, 계속 따라가게 만드는 분”이라고 말한다.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 청소년을 위한 인문 상담 프로그램 ‘생각사이다’에서 강의하는 박승찬 교수.

▲ 수원교구 광명본당 주일학교 교사(오른쪽) 시절.

▲ 독일 유학 시절.



철학 교수와의 인터뷰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앵커인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살아온 인생은 더 역동적이었다. 삶 자체가 감동적인 철학 강의였고 끝나지 않은 드라마였다. 가톨릭평화방송 TV에서 절찬리에 방송됐던 ‘그리스도교 최고의 스승,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을 만나다’의 강사인 가톨릭대학교 성심대학원장 박승찬(엘리야) 교수다. 삶의 곡절(曲折)마다 하느님은 늘 새롭고 더 큰 은총을 주셨다. 다가서면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이만큼 물러나서 또 기다려 주시는 분! 그래서 쫓아가게 만드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한 방향만 보고 걸어왔는데 하느님께서는 전혀 다른 길을 마련하고 기다리셨다. 기도하고 묵상하며 머나먼 과거인 중세(中世)에 숨어 있는 현재와 미래를 찾기 위해 시간의 벽을 넘어 공감의 다리를 놓는다. ‘왜’라는 물음을 수없이 던지며 시간 여행을 하는 그에게서 일상의 불행과 좌절, 근심을 넘어서는 진정한 행복과 치유의 길을 찾아본다. 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



▶ 가톨릭평화방송 TV에서 강의를 마친 소회가 어떠세요.

어려운 내용을 들고 와서 시청자분들을 괴롭혀 드린 것이 아닌가 너무 걱정했는데요. 함께해 주신 제작진 모두 노력해 주셔서 잘 마쳤습니다. 특히 질문과 대답 형식으로 진행하게 돼서 시청자분들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또 제작진께서 강의를 뒷받침하는 자료 영상이나 정리 내용까지 넣어 주셔서 딱딱한 강의를 매우 풍성하게 만들어 주셨고요.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 특별히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을 주제로 잡은 이유가 있나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최고’의 수식어가 많이 붙는 분이지만 최고의 말썽꾼이기도 하셨죠. 젊은 시절엔 세속적인 성공과 부(富)에 매달렸던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약한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을 통해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셨던 성인입니다. 세속적인 것들만 사랑한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땅의 나라에 속한 사람’이라고 가르쳐 주셨고요. 사회 정의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 100대 명강사에 선정되셨는데요, 강의와 책을 보면 ‘왜’라는 질문이 많습니다.

우리는 정답을 쓰는 것에 익숙한 모범생형 공부를 했는데요. 독일 유학 시절 ‘왜’ 그런지 설명하게 하는 공부를 했습니다. 무엇인가를 배우려면 스스로 던지는 질문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세 철학 전공자로서 중세의 보화를 나눠주는 것이 제 사명인데요. 전문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주는 것이 강의죠. 스스로 명강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명강의는 기교보다는 개성인 것 같은데, 일방적인 주입이 아니라 공감하는 것이 명강의의 첫째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신학대학에 가서 철학을 공부하셨어요.

어릴 적 꿈은 사제였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앞만 보고 달려가는 ‘모범생’이었죠. 아버님께서 ‘신학교에 가면 세상을 너무 모르니까 일반 대학을 마치고 나서도 사제의 꿈이 유지된다면 반대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식품공학을 공부한 뒤에도 성소에 대한 꿈이 커져서 신학교에 입학했고요. 교수 후보생으로 선발돼 유학까지 보내 주셨는데 사제의 꿈을 실현하지 못해 교회에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 길을 걸었는데 계속 길을 바꾸는 사람이 돼 버렸어요. 제가 유학 갈 당시에는 실천적인 정의 실현이 매우 중요한 시기여서 이론적인 공부와 연구가 과연 제 소명인지를 생각하며 갈등했습니다. 부제 서품을 미뤄 두고 깊은 성찰을 했는데, 가까이 계셨던 하느님이 아무 말씀을 들려주지 않으셔서 사랑에 빚진 마음으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는 평신도 학자의 길을 가게 됐습니다. 학생들과 교감하는 순간, 강단이 마치 제대처럼 느껴진 적이 있습니다.



▶ 독일에서 어렵게 박사 학위를 받고 오셨는데, 순탄하지 않으셨죠.

유학을 떠난 지 10년 만인 1998년 돌아왔는데 한국은 놀라울 정도로 성장해 있었고 문명적으로는 발전했는데 세속적으로 잘살게 된 것과 정신적인 풍요로움 사이에는 격차가 컸습니다. 유학 갈 때 ‘복부인’이라는 단어가 돌아오니 ‘재테크’로 바뀌었더라고요. 당시 3개 대학을 열심히 돌면서 시간 강사를 했는데 한 달 받은 돈이 56만 원이었습니다. 가장으로서 생계를 꾸려야 했기에 가톨릭중앙의료원 임상사목연구소에 취직했습니다. 그곳에선 중세 철학을 공부할 수 없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아내가 용기를 줘서 다시 시간 강사를 할 수 있었죠. 그러던 중 가톨릭대학교에서 중세 철학 교수 모집 공고가 나서 응모했고 하느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주셔서 지금의 제가 있게 됐습니다.



▶ 모태 신앙이신데, 교수님께 하느님은 어떤 분이세요.

태어난 지 6일 만에 세례를 받았고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항상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유년기에 하느님은 편안한 분이셨고 사춘기 때는 생각이 많아서 까불었던 시기였고요. 청년기인 대학 때는 주일학교 교사와 청년 성서 모임을 했습니다. 지금의 하느님은 숙성된 포도주 같은 분이라고 할까요, 하느님은 계속 바뀌시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언제나 ‘더 크신 하느님(DEUS SEMPER MAJOR)’이신데요. 성장해서 다가가면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은 또 한 걸음 물러나서 기다려 주시는 분입니다. 멀리 가지 않으시면서 더 큰 곳에 가 계신 하느님! 그래서 계속 따라가게 만드는 분이십니다.



▶ 세례명이 눈물로 기도한 선지자 ‘엘리야’이신데요. 어떤 점을 본받고 싶으세요.

엘리야 성인의 열정을 본받고 싶습니다. 제가 만난 ‘더 크신 하느님’ 체험도 엘리야 예언자에게 배운 것입니다. 하느님께선 전혀 새로운 희망으로 항상 은총을 베풀어 주시지요. 또 매혹적인 것은 교육자로서 엘리야의 모습인데요. 엘리야 예언자가 1년 전에 오셨다면 아마 광화문에 나가 크게 외치셨을 것입니다. 정의가 무엇인지 용기 있게 일깨워 주지 않으셨을까요.



▶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죄성(罪性)은 무엇이라고 보세요.

금전 만능주의가 아닌가 합니다. 모든 것들을 돈을 중심으로 계산하는 모습인데요. 돈을 목적으로 소중한 인격체를 사용하는 선교가 가장 큰 죄성(罪性)이라고 생각하고요. 다른 민족의 문화에 대한 배타성도 큰 문제라고 봅니다. 약한 이들에게 열려 있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이방인 과부에게 찾아갔던 엘리야 예언자의 모습을 한 번 본다면 우리 사회에 어두운 면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 철학 강의가 교수님에겐 또 다른 선교의 방법인가요.

서양의 사상과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교 사상은 절대적이죠. 자유와 인권 등 인격체에 대한 개념은 모두 그리스도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 가치로 살아간다면 이보다 더 나은 선교는 없기에 역사적인 부분을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철학은 근원에 대한 질문이고 존재 자체를 부여해 주신 하느님에 대한 질문입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질문은 진정한 행복을 묻는 것입니다. 진정한 철학은 신학으로 나가는 준비이고요, 이것을 연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필요한 ‘정의’는 무엇이라고 보세요.

아리스토텔레스와 성경에서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정의’는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 되돌려주는 것’입니다. 풍부한 자연과 이성을 주신 하느님께서 풍부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셨는데 굶주린 사람이 있다면 야단치실 것입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처럼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소중한 몫을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우리 교회와 사회 전체가 지향해야 할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는 정의는 생떼이고요. 진정한 정의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배려, 특히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해 주세요.

스펙과 성적을 생각하다 보니 자신을 키우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천편일률적인 취업 준비에 파묻혀 있고요. 방학 때 ‘학원 간다’는 학생은 저한테 야단을 맞습니다. 방학에는 다양한 체험을 하라고 권합니다. 더는 대기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함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 어떤 성경 말씀을 늘 마음에 담고 계십니까.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 5,3-4) 이 말씀이 이해가 되나요? 저는 처음엔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런데 가장 힘든 곳에 떨어졌을 때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더는 떨어질 수 없는 곳까지 내려갔을 때 이 말씀이 희망이 돼 줬습니다. ‘모두가 위안을 주지 않는다 해도 내가 너를 들어 올려 주겠다’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떨어진 곳이 마지막이 아니라 고통은 지나가고 새로운 희망이 올 것이라는 하느님의 희망을 전해 준 말씀으로 저에게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토마스 아퀴나스의 방대한 작품들을 번역하는 작업은 은퇴 후에도 계속할 생각이고요. 몇 년 전부터 새로운 숙제가 생겼습니다. 철학 상담을 전공한 아내와 함께 인문학적 소양을 접할 기회가 적은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스스로 희망을 찾아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형과 누나가 되어줄 일꾼들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그 일은 지속해서 하려고 합니다. TV 방송 시각 : 8월 29일 오후 7시, 30일 오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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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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