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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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22) 윤세영(안드레아) 영화감독

사제 꿈꿨던 영화감독, 소록도 천사의 삶 스크린에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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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요셉 유치원 시절 윤세영 감독.



“2005년 11월 23일,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 편지 한 통이 배달됐다. 내용은 같았다. 이게 두 천사의 마지막 편지였다”로 시작하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은 20대에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소록도에 와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고 43년 후 70세가 넘어서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이다. 영화는 담담하게 흔적과 기억 그리고 증언을 담았다. 다른 영화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깊은 감동과 울림을 세상에 던진 영화 감독이 궁금해졌다. 영화를 연출한 윤세영(안드레아) 감독을 만났다. 이제 막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젊은 신예 감독이지만 우리 삶의 크고 작은 고민을 피하지 않고 ‘사랑을 통한 희망’을 역설했다. 배우로 활동하는 아내(박희본 마리스텔라)와 미사 후에 조용히 주님께 고백하고 기도할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작은 떨림’이 쌓인다고 한다. 약함을 드러내는 것을 주님께 자랑하며 ‘사람이 희망이고 사랑이 사람 그 자체’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한다. 어떻게 하면 서로에게 기쁨을 주고 기쁨을 받을 수 있을까? ‘사랑의 의인화’를 함께 고민해 본다.



▶ 지난 4월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연출하셨죠.

▲ 2016년 10월 마리안느 할머니와 함께.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소록도에서 43년 동안 한센인으로 위해 봉사한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간호사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개봉해서 한 달 정도 상영했고 지금은 다양성 영화를 지원하는 작은 극장과 IPTV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달(9월)에 서울시의 다양성 영화 지원으로 공공 상영 중인데 40명 이상 단체가 신청하면 CGV나 메가박스 등 복합 상영관에서 상영할 수 있습니다.


 

▶ 다큐멘터리 영화 연출은 처음이신가요.
 

그동안 계속 극영화 위주로 작업했습니다. 이번이 첫 장편 영화이자 다큐멘터리 영화로 1년 3개월 정도 작업을 했고요. 마지막 편집할 때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들과 친해지고 스태프들과 무엇을 강조해야할지 느낌이 막 생기는 순간 끝났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핵심은 대상과의 소통과 교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고요. 두 분의 인생을 한두 시간에 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 이 영화로 올해 가톨릭 매스컴상 특별상을 받으셨어요.
 

독특한 스타일보다는 촬영 과정에서 세상에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는 두 분에 대한 도덕성을 보여 주는데 더 신중을 기했습니다. 두 분의 만족도와 이해를 존중해 최소한의 분량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다큐멘터리의 생생함보다는 심상을 통한 은유적 방법, 이미지와 음악으로 두 분의 진솔함을 전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매스컴상 심사위원께서 ‘두 할머니와 관객들이 영적 대화와 친교를 이루게 했다’고 심사평을 해주셨는데요, 과분한 상이고 너무 영광이었습니다.

 

▶ 수교 125주년을 맞아 오스트리아 현지에서 특별 상영됐죠.

 
▲ 오스트리아 현지에서 촬영 중 이동하는 윤세영(왼쪽) 감독.

지난 6월 한국과 오스트리아 수교 기념으로 상영됐는데 많은 분이 두 분의 삶에 놀라워했습니다. 뒤풀이 자리에서 소록도에 계신 분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연로하신 두 분의 뜻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되새기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실은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할머니와 인터뷰 출연자들이 함께한 두 번째 시사회가 더 두려웠는데요. 두 분께서도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기회가 돼서 아주 좋아하셨던 것 같습니다. 마가렛 할머니는 영화에 나오는 조카며느리와 맨 앞줄에서 관람하셨는데, 웃기도 하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셨습니다. 치매 초기여서 다 이해를 하실까 하는 우려도 있었고요.

 

▶ ‘그리움은 쌓여 있는데 다시 소록도에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라고 말씀을 하신 것 같아요.
 

마가렛 할머니는 워낙 매스컴을 멀리하신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말씀하셨는데요. ‘소록도 시절이 너무 행복했고 거기 있는 사람들을 너무 보고 싶지만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고 나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과 이 공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계신 곳, 주님이 필요로 하는 곳에서만 내가 가장 빛을 발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두 할머니의 간호학교 60년 후배들에게 ‘이런 사람이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질문을 했는데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못 할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과연 용기 있게 살았나?’하며 스스로 반문도 많이 했습니다.

 

▶ 처음 연출 제의를 받고 영화 제작하면서 어떤 감동을 받으셨나요
 

두 분을 알았다면 연출을 못했을 겁니다. 과연 어떤 분들일까 하는 호기심으로 시작했습니다. 영화 제작하면서 받은 감동은 죽을 때까지 유효할 것 같습니다. 작품이 끝나면 정리가 되는 극영화와는 달리 착해져야 할 것 같고 100 실천은 어렵더라도 노력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마치 선물 같은 감동을 받았죠. 영화발표 당시가 사순 시기였는데 오스트리아 현지 양로원의 조그만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마가렛 할머니를 보면서 하느님은 한 분이고 그 자체이신데 이분들이 전적으로 신뢰하는 하느님과 내가 생각하는 하느님은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 영화에 담지 못해 아쉬운 부분이 있으세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종교적으로 다르게 표현되는 방법들을 이해했던 두 분의 모습을 다 담지 못해 아쉽습니다. 두 분은 ‘내 것만이 옳고 이것만이 최고’라는 생각이 없으셨어요. 소록도에서 두 분은 종교가 다른 한센인들이 하나가 되게 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처음 제작할 때는 ‘희망을 주는 영화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두 분은 인터뷰가 끝날 때마다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안드레아! 오늘 하루도 기쁘게 살아’라고요. 이분들에겐 기쁘게 살았던 하루하루가 모여 43년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요. 성인들만이 할 수 있는 대단한 일도 기쁘게 하루를 살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죠.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기쁨을 주고 기쁨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꼈으면 합니다.

 

▶ 언제부터 영화 감독을 꿈꾸셨어요.
 

원래 글을 쓰고 싶었던 문예창작과 지망생이었는데, 우연히 한 영화를 본 후 글의 행간을 이미지로 표현하고 싶어 영화학과에 가게 됐습니다. 20대 초반에 영화를 시작했고요. 저에게 종교는 ‘추억’인데요. 어떤 영성과 교리보다 어린 시절 성당의 추억이 저를 지탱해 주는 끈입니다. 어머니가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하셔서 저는 성당에서 많은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 꿈은 ‘사제’가 되는 것이었어요. 한동안 냉담했는데 아내를 만나면서 다시 신앙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냉담 중이신 분들은 가까운 성당을 찾아 짧은 시간이라도 묵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최소한 주일미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큰 걸음은 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요리사’도 하시고 ‘요리예술사(푸드스타일리스트)’라고 알고 있는데요.
 

영화 감독이 불안정한 직업이어서 생계형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요리학교에 다니고 요리사로도 잠깐 활동했고요. 영화 회사로 돌아와서 독신 생활을 주제로 한 웹 드라마에서 ‘요리예술사’로 몇 작품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요리와 주방일이 영화 작업과 비슷합니다. 다만, 영화는 시간이 최소 1년 반 정도 걸리지만, 요리는 압축해서 단 하루 만에 끝납니다. 관객은 식사하는 손님이죠. 요리는 그날 피드백이 오지만 영화는 관객을 만나기까지 쉽지 않습니다. 가장 긴 요리와 음식이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 걸그룹 출신 아내(박희본)와 명동성당에서 결혼하셨죠?

▲ 윤세영 감독은 가수 출신 박희본씨와 2016년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혼인했다.

영화 ‘트레일러’ 조감독을 할 때 현장에서 아내의 휴대전화 와이파이가 안 터져 제가 도움을 줬거든요. 그때 아내가 제 휴대전화에서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을 보고 같은 신자라 것이 매우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아내 세례명은 ‘마리 스텔라’예요. 이야기하다 보니 서로 좋아하는 것도 같고 공통점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둘이서 처음 만난 곳도 명동성당입니다.

 

▶ 영화 감독과 배우 부부이신데, 신앙생활이 부부에게 어떤 도움이 되시는지요.
 

항상 신혼일 수 없는 게 부부생활이잖아요. 미사가 끝난 뒤 5분 정도 기도하는 아내 곁에 있으면 무언가 저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또 주님께 저의 고백과 고민을 풀어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은 저에게 어떤 큰 의미나 단어들로 표현되는 게 아니라 굉장히 ‘작은 떨림’이 쌓여서 저의 인격체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 일 때문에 지방에 같이 가더라도 저희는 꼭 가까운 성당을 찾아갑니다.

 

▶ 평소 마음에 담고 있는 성경 구절이 무엇인가요.
 

‘내가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들을 자랑하렵니다’(2코린 11,30)입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분의 삶과 비슷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자신의 약함을 보여 주셨잖아요. 한센인과 주위의 모든 분을 융합한 것은 강함과 억지스러움이 아니라 피하고 싶지만 순수하게 드러내신 마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에게는 가장 필요한 이야기이고 가장 중요하게 다가오는 구절입니다.

 

▶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으세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하고 싶은 것들을 용기 있게 진행해야겠지요. 영화는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잖아요. 그 이야기를 깊이 있게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만의 스타일로 표현한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장르나 시기를 정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고요. 인생에 대한 이야기와 고민을 담는 작업은 축복받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영화 안에 담겨 있는 콘텐츠(내용)인 것 같습니다 
 

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7-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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