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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성월 특집] ‘천주동산’ 가꾸는 마산교구 원로사목자 이한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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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의 꽃밭’이라 이름 붙여봤다. 장미, 백합, 제비꽃, 라벤더….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 찬 꽃동산을 그렸다. 5월 17일, 경남 창원 ‘천주산’ 중턱에 자리 잡은 ‘천주동산’을 찾아가며 말이다. 산 정상엔 비구름이 앉았다. 빗길을 달려 ‘천주동산’ 팻말을 찾았다. 그런데…, 상상했던 백화만발한 꽃동산은 어디에….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모자에 긴 장화를 신은 이가 웃으며 맞았다. 천주동산의 농장주 마산교구 원로사목자 이한기(요셉·69) 신부다.

“신부님, 꽃들은 어디에 있나요…” 인사를 나누며 꽃밭부터 찾았다.

맨 위쪽 다랑이밭으로 향했다. 비를 머금은 장미꽃, 붉은 양귀비꽃이 반겼다. 굵은 꽃송이 아래 야생화도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었다. 다랑이밭을 따라 내려갔다. 곳곳에 이름 모를 들꽃 길이 이어졌다. 소박한 꽃밭이었다. 성모님을 닮은.

■ 본당 제단에 바칠 꽃을

천주동산은 이한기 신부가 2016년 1월 사목일선에서 물러나 꽃농사를 지으며 지내는 곳이다. 왜 꽃일까.

“은퇴하면서 농사를 짓고 싶었어요. 무엇을 재배할까 생각하다가 제대꽃꽂이와 레지오마리애 회합 때 꽃들이 필요한데, 예산이 부족해 신자들이 사비를 들이는 것을 보았어요. 이왕 농사를 짓는 거 꽃을 재배해 본당에 봉헌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돌을 주워내고 땅을 고르는 데만 1년이 걸렸다. 중장비 면허증을 따고, 꽃에 대한 공부도 했다.

지난해 봄, 처음으로 꽃 묘목을 심고 꽃씨를 뿌렸다. 처음엔 장미, 백합, 거베라만 재배하려고 계획했다. 어느 날, 뿌리지도 않은 꽃들이 여기저기 활짝 핀 것을 보면서 자연의 섭리를 느꼈다.

“꽃씨가 날아와 꽃이 피기도 합니다. 지난해 백합 모종을 심은 것보다 계곡을 따라 핀 야생 백합이 어찌나 아름답고 향기가 그윽하던지. 하느님께서 뿌리신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이 신부가 재배한 꽃들은 가까운 본당 신자들이 꺾어가기도 한다. 내년에는 더 많은 꽃을 나누려 부지런히 모종을 심고 씨를 뿌린다.


■ 성모님께 아름다운 장미 화관을

이 신부가 꽃 재배를 마음먹은 데는 성모님과 약속도 있었다. 부제품을 앞두고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 예전 본당 수녀님을 만나러 청주교구 감곡성당을 찾았다. 그곳 성모상 앞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사제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매년 성모님께 장미 화관을 씌워드리겠습니다.”

본당 성모의 밤 행사 때마다 성모님께 화관을 씌워드리며 약속을 지켰다. 사제로서 39년. 성모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어떻게 사목자의 길을 걸었을까. 성모님께 늘 감사했다. 성모님과 함께 늘 행복했다.

이 신부의 방에는 특별한 성모상이 있다. 6년간 에콰도르 사목을 하고 떠나올 때 신자들이 선물한 ‘로하스의 성모상’이다. 성모상 옆엔 직접 키운 장미꽃이 한 아름 꽂혀 있다. 올 성모성월에도 그 약속은 이어졌다. 그리고 성모님께 봉헌하기 위한 꽃 재배까지. 초보 농사꾼으로 일이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하루하루가 기쁘다.

“하루의 변화는 잘 느낄 수 없지만 한 주, 한 달이 지나 어느 날 문득 보면 새순이 돋고, 꽃망울이 맺히고, 그러다 활짝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서 놀라기도 합니다. 생명의 신비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죠.”

들풀도 귀하게 여기며 돌보는 이 신부. ‘천주동산’에 성모님의 꽃들로 향기 그윽한 날을 꿈꾸며 오늘도 부지런히 밭을 가꾼다. 주님 제단에, 성모님 앞에 놓여질 꽃들을 피우기 위해.





박경희 기자 july@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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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8-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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