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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2018 복음의 기쁨으로] 5. 한국 교회의 속병, 냉담 교우(하)

30년 냉담 부부 마음 녹인 소통과 배려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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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냉담 교우 사목에 일대 변화가 일고 있다.

많은 본당이 냉담 교우 회두에 골몰하는 사이, 일부 본당이 냉담 교우 사목의 패러다임을 발 빠르게 전환해 시행 중이다. ‘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과 ‘청주교구 음성본당’은 ‘지속적인 관리’와 ‘베푸는 사목’으로 방향을 바꿔 굳게 닫힌 냉담 교우들의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교회가 늘어나는 냉담 교우를 대상으로 벌여온 사목은 주로 ‘냉담 교우 회두 운동’, ‘가두 선교 및 권면’ 등이었다. 냉담 교우 손을 잡고 무작정 고해소로 데려가거나, 성사생활을 하지 않은 죄의식을 은연중에 덧씌우기도 했다. 이 같은 회두 운동의 일차적 목적은 판공성사 참여율, 주일미사 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한 두 본당의 목적은 신자 각자의 삶 속 어려움에 먼저 다가가 ‘들어주는 것’이다. 왜 냉담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일일이 묻고 기록한 뒤 관계의 끈을 놓지 않고 돕는 ‘소통하는 사목’을 적용한 것이다. 필요하다면 교리교육 시간, 신자석까지 과감히 바꿔가며 ‘맞춤형 사목’도 펼친다. 냉담 교우 사목이 ‘일회성 운동’에서 ‘쌍방향 소통과 배려’의 형태로 진일보하고 있다.

▲ 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안셀모회’ 박영실 회장(왼쪽)과 김진하 부회장. 안셀모회 회원들은 새 신자와 냉담 교우들에게 연락해 ‘맞춤형 도움과 배려 활동’을 하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 지내도록 물심양면 돕고 있다.



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안셀모회’


“냉담 교우들에게 무조건 ‘성당 나오세요’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처한 어려움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방식으로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전해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주임 주수욱 신부) ‘안셀모회’는 냉담 중이거나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맞춤형 도움’을 주는 단체다. 안셀모회 박영실(신디케스) 회장은 “주말 부부, 주말 귀농 가정, 생업에 바쁜 사람 등 신자들이 다양한 형태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더라”면서 “끈질긴 사랑으로 그들이 신앙을 잇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안셀모회는 2015년 단체가 생기자마자 본당 교적 신자들의 신앙생활 실태를 조사했다. 속사정은 다양했다. 성사생활과 단체 활동 모두를 열심히 하는 ‘핵심 신자’ 외에 주일 미사에만 나오는 사람, 전출입 미신고자, 영세하고 곧장 냉담한 이들 등 각양각색이었다. 안셀모회는 이들을 핵심, 냉담 위기, 냉담, 전출입자, 새 신자 등 7가지 유형으로 나눠 접근했다.

특히 역점을 둔 대상은 냉담 위기에 있거나 냉담 중인 신자들. 회원 10여 명은 관리 기록부를 두고 계속 연락을 취했다. 무조건적인 ‘회두’나 ‘선교’보다 ‘도움’과 ‘배려’를 지향했다.

“성당에 못 나오는 어르신을 찾았더니 인천의 한 병원에서 혼수상태로 입원해 계셨어요.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구역장이 찾아가도록 했습니다. 주기적으로 안부를 여쭙고 만일을 대비해 연령회에도 연락해놨죠. 다행히 쾌유하신 어르신은 무척 고마워하셨고, 비신자인 남동생은 성당에 다녀보겠다고 하더라고요.”

고3 학생에게도 연락했다. 전화를 받지 않아 성경 구절과 함께 “공부하느라 수고가 많다”며 응원 문자를 계속 보냈다. 수능 시험을 앞두고 떡도 선물했다. 시험이 끝나고 연락이 왔다. “그동안 주신 문자가 무척 힘이 됐습니다. 이제 성당에 잘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생업 때문에 고해성사를 못 보는 신자에게 직접 찾아가 인근 성지로 안내해 고해를 바치도록 돕고, 어린 자녀들 때문에 미사 참여가 힘들다는 젊은 엄마를 위해선 성당 맨 앞자리를 유아석으로 만들어줬다. 바쁜 신자를 위해 견진 교리 시간을 조정해주기도 했다. 전출 신고 없이 이사가 버린 신자의 관할 본당에 연락해 교적을 옮겨주고 해당 구역장에게 연락까지 취하는 등 세심한 ‘신자 맞춤형 활동’을 펼쳤다. 이 같은 활동 덕에 냉담 신자들도 ‘우리 성당이 나를 무척 생각해주는구나’ 하는 감동을 하고 있다. 주수욱 주임 신부는 매달 회의를 통해 다양한 사정을 듣고, 필요한 조처를 해주고 있다.

주 신부는 “신자들과 협력해 각자의 어려움을 세심하게 돌아보고, 공동체 안에서 잘 살아가도록 돕다 보니 본당 전체가 신자들의 생활을 파악하고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됐다”며 “‘진짜 소통’, ‘배려의 사목’으로 본당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손병선(아우구스티노) 회장은 “오늘날 여러 이유로 세상 속에 꼭꼭 숨어버린 냉담 교우, 형식적인 인사와 소개에 그치고 이내 관계가 끊어지는 새 신자나 전입 신자들을 위해 특히 세심한 ‘신앙 돌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본당에 ‘신앙생활 도우미’, ‘일대일 신앙 상담사’를 두고, 그들이 성당을 찾는 이들을 언제든 환대하고, 그들의 재능이나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파악해 돕는 ‘신자 돌봄 활동’을 한다면 많은 이가 냉담보다는 친교와 관심 속에 신앙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 청주교구 음성본당 ‘1ㆍ1운동위원회’에서 냉담자와 병자 방문 및 관리를 하고 있는 ‘한빛팀’이 월례회의에서 활동사항을 논의하고 있다.

▲ 청주교구 음성본당은 냉담자 및 병환 중 신자들에게 ‘기도벗 배지’를 선물하며 ‘성당이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전한다. 본당 모든 신자들은 이 ‘기도 벗 배지’를 가슴과 가방에 달고 다니며 미사 전, 매일 9시에 냉담 교우와 새 신자를 위해 기도를 바친다. 청주교구 음성본당 제공



청주교구 음성본당 ‘1ㆍ1운동위원회’

“할머니, 저희 본당 모든 교우가 어르신을 위해 기도해드리고 있습니다.”

“누가 나를 기억해주겠습니까. 수녀님, 정말 고맙습니다.”

청주교구 음성본당(주임 최문석 신부)의 김 가브리엘라 수녀가 냉담 중인 한 어르신을 두 번째 방문했을 때였다. 가족 모두 다른 종교를 믿는 바람에 평생 성당을 제대로 못 다녔다는 할머니는 현재 혼자 살면서도 성경과 기도서를 장롱 속에 숨겨둔 채 냉담 중이었다. 김 수녀는 할머니와 같이 기도했고, 할머니는 고마운 마음에 끝내 눈물을 흘렸다.

음성본당에는 ‘1ㆍ1운동위원회’가 있다. ‘1인 1단체 가입’을 목표로 꾸려진 위원회 산하에는 △새벗팀(새 신자 관리) △일더하기팀(일반 신자 동반) △한빛팀(냉담자 및 병자 관리) △홍보팀을 갖추고 있다. 2016년 본당이 실시한 ‘신자 전수조사 및 신앙생활 실태 파악’을 통해 신자 유형별로 필요한 사목을 하고자 올해 꾸린 ‘본당 복음화 기구’다. 본당은 전수조사를 통해 신앙생활을 잘하는 순으로 △핵심 △주변 △냉담 위기로 신자들을 분류했고, 위원 20여 명이 각 팀에서 맞춤형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 수녀가 속한 ‘한빛팀’은 냉담자ㆍ병자 관리 및 방문을 담당하고 있다. 한빛팀이 냉담자ㆍ병자를 ‘감화’ 및 ‘회두’시킨 사례는 이미 셀 수 없이 많다. 부친 제사 문제로 남편이 2년 전부터 냉담 중인 가정을 방문한 한빛팀은 차근히 ‘천주교식 제사법’을 일러줬고, 이후 남편은 성당에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한빛팀이 방문해도 본체만체하며 차갑게 대하던 한 어르신은 병환 중에 있었다. “신부님이 와도 말하기 싫다”던 어르신은 신기하게도 첫 방문 일주일 뒤 본당에 병자 영성체를 부탁해왔다. 그때 어버이날 카네이션과 함께 선물했던 ‘기도벗 배지’, 그리고 대화가 오랜 기간 굳었던 마음을 풀었던 것이다. 한 달 뒤 갑자기 위독해진 어르신은 병자성사를 받고,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느님 곁으로 갔다. “집에 찾아오지 마세요” 하던 30년 냉담 부부도 한빛팀 위원들의 방문과 기도를 듣고 냉담을 풀기로 약속했다. 한빛팀은 빨강ㆍ노랑ㆍ초록의 ‘신호등’ 불빛으로 냉담 정도를 분류해 수시로 변동사항을 기록하고 있으며, 본당은 매 미사 전 냉담 교우, 새 신자를 위해 묵주기도 5단을 바치고 있다.

최문석 주임 신부는 “신자라고 해서 다 같은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 전수조사를 하고 나니 공동체 문제점, 신자 개개인의 현실을 알게 됐다”며 “복음화는 하느님 사랑과 기쁨을 느끼는 정도이지, 숫자 싸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숫자보다 신자들 마음을 먼저 생각하자 음성본당 미사 참여율은 상승세로 반전됐다. 반면 본당 냉담률은 꾸준히 감소 중이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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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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