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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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33) 왜 성관계가 내게 큰 상처만 주었을까?

절제와 정결 빠진 사랑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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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를 존중하고 절제하지 못하는 사랑은 남녀 서로에게 큰 상처로 남을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절제와 정결의 덕목이 지키기 매우 어렵지만 진실한 사랑의 방법’이라고 청년들과 만난 자리에서 밝힌 바 있다.



상처로만 남은 첫 성관계

사례1. 나는 가톨릭 신자로서 확실한 성적 가치관을 가졌다고 생각했으나 남자 친구를 사귄 지 100일도 되지 않아 첫 경험을 하게 됐다. 성관계 후 나에게 찾아온 건 임신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남자 친구를 신뢰할 수 있을까’ 하는 미래에 대한 걱정도 함께 몰려왔다. 분명 콘돔으로 피임했지만 임신 가능성은 있었다. 남자 친구는 불안해하는 나에게 “피임 확률이 80 이상이니까 괜찮을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20의 확률은 생각 안 하느냐” 물었고 남자친구는 그런 나를 안심시키기만 했다. 우리는 임신이 되지 않길 바라며 계속 성관계를 했고, 나는 콘돔만으로는 불안해 피임약을 먹으며 이중피임으로 임신 불안감을 낮췄다. 그러나 매번 테스트기 확인을 해야만 안심했다. 첫 남자 친구와는 성관계의 불안감을 주제로 자주 대화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삐걱거리다가 결국 헤어졌다.

첫 경험 전, 나는 스스로 여러 번 질문했다. ‘내가 원해서 하는 성관계가 맞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 ‘사랑해서 하는 거야?’ 이러한 질문을 여러 번 물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펑펑 울만큼 후회했다. 여러 번 나 자신에게 물었지만, 내 대답은 “YES”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었고, 남자친구의 요구에 상대방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두려워서 한 선택이 바보 같았다.



이 여성이 첫 성 경험 이후 기쁨과 행복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 이유가 무엇일까? 피임 실패 가능성은 외면하고, 근거 없는 안심만 주는 남자 친구가 나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자 친구가 나를 책임지려는 마음보다 성 경험의 쾌락을 더 중시한다는 걸 감지했기 때문이다. 이 여성은 이미 남자 친구와 자신의 관계가 사랑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호기심과 남자 친구의 설득으로 시작한 성관계를 멈추기 어려웠다. 이성(理性)으로는 원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큰 힘에 이끌려 성관계에 휘말린 것인데, 이 어리석음은 마음과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과연 여성만 이런 상처를 받을까?



사례2.저는 남자치고는 굉장히 성에 대해 진지하고 보수적입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포르노에 노출됐고, 음담패설 방송이 인기인 시대에 성교육 필요성 자체를 못 느꼈습니다. ‘다 아는데 무슨 성교육이 나에게 더 필요한가?’라는 태도로 살아온 것입니다.

그러다가 한 번도 맞닥뜨린 경험이 없는 일을 겪었습니다. 작년까지 몇 차례 여자 친구를 만났지만, 성 경험은 하지 않았습니다. 혼전 순결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제가 책임질 수 있을 때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답게 성관계를 하고 싶다는 소망과 신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보다 연상이었던 여자 친구가 넌지시 여러 번 의사를 표현했음에도, 저는 25살이 될 때까지 신념을 지키고 살았습니다. 사실 제 주변을 보면 빠르면 고등학생 때, 늦어도 스무 살이면 성관계를 시작하니, 저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였습니다. 제 신념을 지키며 살았음에도, 친한 친구들과 선배 형들에게 ‘넌 줘도 못 먹는 놈’이라는 말을 들으며 오히려 놀림거리가 됐습니다.

25살이 되던 작년 여름, 저는 친구 소개로 지금의 여자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여자 친구는 이전 남자 친구와 성관계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너무 속상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다 안아주고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자 친구는 아는 경험을 제가 모르는 것이 무섭고 또 답답해서 저는 무언가에 쫓기듯 첫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애써 지켜왔던 신념이 쉽게 무너지고, 제가 그리던 그런 아름다운 경험을 하지 못한 것에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첫 성관계가 저에게는 큰 상처가 된 것입니다.



이 남성은 성관계로 마음과 영혼에 큰 상처를 입었다.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물건화의 대상이 되면 여성이건 남성이건 큰 상처를 받는다. 이 남성은 인격과 영혼이 일치되는 진정한 성적 결합을 소망했지만, 또래의 조롱과 압력에 등 떠밀리려 원하지 않았던 첫 성 경험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결코, 물건 취급할 수 없는 인간의 성(性)

이런 종류의 성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칠죄종(七罪宗)의 하나인 음욕(淫欲)일 뿐인데 세상의 문화, 특히 대중문화가 여기에 사랑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놓고 ‘합의만 하면 된다’, ‘피임만 하면 된다’ 하며 선전하기 때문에 속아서 상대방을 물건 취급하는 젊은이들이 폭증하고 있다. 인간은 절대적 가치를 지닌 존엄한 존재이기에 절대로 물건처럼 임의로 쓰고 버릴 수 없다. 칸트는 이 윤리 원칙을 「실천이성비판」 정언명령 제2번에서 “나 자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인간을 단순한 수단으로 다루지 마라. 인간을 언제나 목적으로 다루도록 하라”는 말로 정리했다. 인간의 성은 인격과 결합해 있기 때문에 합의나 동의로 주고받거나 이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관련 영상 QR코드



프란치스코 교황도 2015년 6월 교황과 토리노 청년들과 만나 성을 도구화하는 세상 풍조를 따르지 말라고 조심스럽지만 뜨겁게 촉구했다.




“인기 없고 쉽지 않은 말이기는 하지만 한 말씀 드려야 할 듯합니다. 교황은 때때로 진리를 말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써야 하니까요. 사랑은 상대를 매우 존중합니다. 사랑은 사람을 이용하지 않는 거죠. 사랑은 절제할 줄 아는 것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쾌락주의적이며, 향락과 개인적 안위의 삶을 살라고 선동하는 세상에 사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절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결하길 빕니다. 우리는 모두 때때로 이 덕목을 지키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실한 사랑의 방법입니다. 상대에게 참으로 생명을 줄 줄 아는 사랑, 본인의 쾌락을 위해 상대를 사용하지 않는 사랑 말입니다. 이것은 상대의 삶과 생명을 거룩하게 여기는 사랑입니다. ‘나는 당신을 존중합니다’, ‘나는 그대를 이용하기를 원치 않아요’, ‘내가 당신을 사용하다니요?’라고 하는 사랑 말입니다.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요즘의 사랑에 대한 쾌락주의와 가벼움을 극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한 말이 여러분들이 기대한 답이 아니라면 용서해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들이 정결하게 사랑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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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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