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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봉헌과 나눔 정신 깃든 하느님의 집이어야

유럽 현대 성당 탐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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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치히 삼위일체 성당 외부 전경.






서울가톨릭미술가회(회장 안병철)가 7월 17~28일 개최한 ‘알빈 신부 서거 40주기 건축 전시회 참가 및 유럽 현대 성당 건축 탐방’ 관련 특별 기고를 6회 연재한다. 독일ㆍ프랑스ㆍ스위스의 현대 성당 순례에 참가한 신자 건축가와 미술가, 일반인이 각자의 관점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부분을 공개함으로써 미래 한국 교회 건축과 성미술 분야의 발전을 꾀하기 위해서다.





지난여름, 한국가톨릭미술가회 회원들과 함께 독일ㆍ스위스ㆍ프랑스 일대의 현대 가톨릭 성당을 순례 했다. 이번 여행은 2003년 ‘이탈리아 현대 성당 순례’ 이후 15년 만의 행사로 유럽의 현대 교회 건축 흐름, 특히 21세기의 교회 건축 동향을 살펴볼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알빈(1904~1978) 신부의 서거 40주기를 맞아 출판된 독일어판 「교회 건축가 알빈 슈미드(KIRCHENARCHITEKT ALWIN SCHMID)」의 출판 기념회와 그의 건축 사진 전시회에 참가하고, 유럽 최대의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인 람베르글라스(LambertsGlas)를 방문해 마우스 블론 유리(mouth blown glass)의 제작 과정도 체험했다.

20세기 현대 교회 건축의 눈부신 발전은 그 양과 질에 있어서 독일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그것은 1ㆍ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수천 개의 교회가 파괴되었고, 전후 경제 성장으로 축적된 부(富)를 국가 차원에서 교회 건축과 교회 예술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1차 대전 후의 1920년대와 2차 대전 후의 1950ㆍ60년대는 독일 교회 건축의 부흥기라고 할 수 있으며 기라성 같은 교회 건축 전문가(Kirchenbaumeister)들이 출현했고 전문적이고 다양한 작업과 이론적 연구가 축적되었다. 독일 전역에 약 3000개의 교회당이 건축되었으며 이중 절반 정도가 가톨릭 성당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천주교 창립 200주년(1984년) 이후 급속한 교세의 성장과 수도권 도시 개발로 신자 수 580만 명에 본당 수 1700여 곳으로 지난 30년간 1000여 개의 본당이 증설됐다. 이전의 성당 개축과 공소, 성지, 수도원의 성당 건축을 합하면 50년 전의 독일과 거의 맞먹는 숫자이다. 국토 면적(약 3.5배)과 신자 수(약 1.6배)를 참작하면 밀도에서 전후 독일의 2배에 달하는 성당이 건축된 셈이다.

독일의 현대 교회 건축은 높은 종탑이나 화려한 장식보다 전례의 풍요로움과 하느님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는 상징이 풍부한 내부 공간, 합리적인 구조와 아름다운 외관 형태로 주변 도시나 마을에서 최고의 건축으로 꼽혔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지난 30년간 세계에 유례가 없는 한국 교회 건축의 황금 시기였다는 것을 새삼스레 인식할 때 모두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각 교구의 건축위원회가 활발히 가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성당다운 성당으로 생각한 건물은 하나같이 전례 정신과 무관하게 지어진 절충 형태의 낡고 인습적인, 더러는 우스꽝스럽기조차 한 건물들이었다. 오히려 전례의 풍요로움을 반영한 인상적인 내부 공간은 성당답지 않은 것으로 배격되었다. 전국적으로 계속 지어지는 무국적의 중세풍 성당을 볼 때 우리들의 건축 문화에 대한 인식 수준에 심각한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가톨릭 신자들은 명동대성당과 같은 고딕 양식이 가장 가톨릭적이라고 생각한다. 고딕 양식이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가장 적합한 성당 건축양식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지만, 고딕 건축이 갖는 종교 건축으로서의 ‘도덕성’과 ‘진정성’의 가치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고딕 양식, ‘봉헌’과 ‘나눔’의 현대 가톨릭 전례 개념과 무관한 강당 형태의 단일 내부 공간에 고딕 양식의 외피를 본뜬 장식 요소들로 치장한 절충식 건축을 고딕 양식으로 오해한다. 진정성이 빠진 시대착오적인 성당 건물을 양산하고 있다.

왜 우리는 ‘유아 세례가 대부분인 유럽의 성당에도 필수적인 세례대가 사라지는지’, ‘성소에 들어가는 준비와 과정 공간으로서의 배랑(narthex)이 극장 로비처럼 되고 있는지’, 또 ‘신자들은 사제(주연)와 성가대(조연)의 전례(공연)를 구경하는 관객이 되기를 스스로 원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가난의 정신, 환경 보호와 생명 운동을 이야기하면서 왜 주변을 압도하는 성전을 지어야 하는지, 건축 과정에 모두가 ‘진정성’을 갖고 참여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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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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