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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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도보순례 동행 취재기 (하)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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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 카미노’(Buen Camino, 좋은 순례길)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순례자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다. 육체적으로 힘들 수 있는 순례를 무사히 잘 마치고 종착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말이다. 일면식이 없는 사이일지라도, 이 한마디로 그저 함께 걷는 친구가 되고 동료가 된다. ‘올라’(Hola, 안녕)도 순례자들이나 마을 주민들과 마주칠 때 즐겨 쓴다. 이때 ‘그라치아스’(Gracias, 감사합니다)나 ‘이구알멘떼’(Igualmente, 당신도)라고 답하는데, 이런 인사는 지치고 피로할 때 서로에게 힘과 기운을 준다.

자전거 순례를 하며 ‘부엔 카미노’라고 먼저 손을 흔드는 이들을 자주 마주쳤다. 혼자 걷느라 바빠서 주위 신경 쓸 틈 없이 속도를 내던 중 그런 인사와 배려를 받으면 머쓱해지고 또 하나의 묵상 거리를 찾게 된다. 고독하고 피로한 순례길, 누군들 고단하지 않을까. 같이 걷는 이에게 앞서서 좋은 순례를 빌어주는 인사들은 ‘더불어’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대전가톨릭평화방송 순례단 사이에서도 ‘부엔 카미노’는 자연스러운 인사가 됐다. 그 배려의 인사는 또 다른 배려로 커지는 듯했다. 몸 상태를 서로 걱정해 주고, 약을 나눠 주고, 휴게소에서도 따뜻한 차를 먼저 건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도 혹여 순례단에 폐가 될까 봐 발걸음을 신경 쓰는 마음들 속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말없이 사람들을 배려해 주는 길’이라던 한 사제의 소감이 떠올랐다.


■ 삶의 순례자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간혹 길에 세워진 십자가를 만나 볼 수 있다. 길 위를 걷다 하늘나라로 떠난 이들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그 위에는 작은 돌이나 들꽃 등이 놓여 있다. 세상의 순례를 마치고 먼저 떠난 이를 기도하고 추모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어찌하여 이 길을 걷게 됐을까, 왜 죽음을 맞이하게 됐을까. 낙엽이 내려앉은 순례길을 걸으며 삶과 죽음의 뜻을 되묻게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특별희년 선포 칙서 「자비의 얼굴」에서 “삶 자체가 순례이고, 인간은 나그네, 곧 간절히 바라는 목적지를 향한 길을 가는 순례자”라고 했다. 그 말씀 같이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의 삶이란 영원함을 찾아 떠나는 순례의 길일 것이다. 죽은 이를 기억하는 순례자들의 손길 속에서 삶과 죽음, ‘오늘은 나, 내일은 너’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렸다.

그렇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우리 모두가 삶의 순례자라는 화두를 다시금 던졌다. 이제 자신의 생을 다해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조개 모양 표지석은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본향’이 어디인지 가리키는 듯했다.


■ 새로운 시작

10월 30일 도보 순례 마지막 날은 비가 계속 내리는 가운데 오전에만 15㎞를 걷는 강행군이었다. 종착점이 가까워져 오면서 자기 몸집만큼이나 큰 배낭을 메고 속속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자들을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지금도 한 해 수십만 명이 찾는다는 산티아고 순례길. 순례자 10명 중 7명 정도는 일부러 피레네산맥을 넘는 험준한 길을 택한다고 한다. 그에 대해 한 작가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고난’으로 맞물린다”고 했다. 중세 때 ‘하느님을 위해서 온몸과 정신과 마음을 온전히 봉헌하며 걸었던’ 이 길이 현대인들에게 속세의 욕망을 버리고 싶은 ‘구도’(求道)의 가치로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순례단은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하기에 앞서 ‘몬떼 도 고소’(Monte do Gozo, 기쁨의 언덕)에 모였다. 대성당을 5㎞ 정도 남겨 놓은 곳에 있는 이 언덕은 순례길의 완주를 상징한다. 현재 여기에는 1982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방문 기념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성인은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찾았다.

곧이어 순례단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입성했다. 이 도시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저기 배낭 멘 이들이 끊임없이 들어섰다. 그야말로 순례자들의 도시였다. 1075년 짓기 시작해 1211년 축성된 대성당은 스페인에서 가장 큰 로마네스크 건축물이다.

산티아고 100㎞ 도보 순례는 이날 오후 5시30분 대성당 내 필라르(Pilar) 경당에서 봉헌된 미사로 마무리됐다.

대전가톨릭평화방송 사장 백현 신부는 강론을 통해 “야고보 사도의 무덤을 찾아 걸어온 발걸음들이 모여, 목표를 채우고 한껏 부풀어 오른 반죽이 됐다”며 “이제 우리는 그 힘으로 누군가의 둥지가 되고 그늘이 돼서, 나로 인해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가 이룩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례로 돌아가면서 진행된 평화의 인사에서는 대다수가 눈시울을 적셨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또 함께했기에 가능했던 순례 여정이었다. 그런 공감대 속에서 순례단은 서로를 축복해 주고 평화를 기원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다.

박미선(엘리사벳·대전교구 천안쌍용3동본당)씨는 “이제 일상 안에서 또 다른 순례를 출발해야 할 것”이라며 “주신 은총을 되새기며 하느님 안에서 계속 순례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청하겠다”고 말했다. “걸었던 길과 만났던 사람들 안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는 남영자(안나·대전교구 세종성프란치스코본당)씨는 “감사와 사랑을 배워간다”고 했다.

부모님과 함께 참여한 임도균(대건안드레아·초5·대전 죽동본당)군은 “순례 동안 사제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며 “앞으로의 모든 일을 하느님께서 잘 이끌어 주시도록 자신도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대전가톨릭평화방송의 이번 순례는 물질주의와 세속화가 범람하는 시대에 오랜 역사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음으로써 신앙과 영성을 새롭게 일깨우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앞으로 매년 순례 프로그램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백 신부는 “함께 걸으며 두려움을 이기고 새로운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며 “그 용기가 ‘지금 여기에서’(hic et nunc) 현실로 드러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스페인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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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8-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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