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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성미술 보물을 찾아서] (6) 남용우의 ‘성모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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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남용우의 ‘성모칠고’



1954년 성미술 전람회에 출품한 23명의 작가 중 여성 작가는 한국화 부문에 출품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안혜택 수녀와 서양화를 출품한 남용우 둘뿐이었다. 그중에서 오늘 소개할 ‘성모칠고’는 남용우(마리아, 1931~)의 작품으로 당시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최연소 출품 작가였다.

남용우는 1953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스테인드글라스와 모자이크를 공부하고 귀국해 한국 스테인드글라스 1세대 작가로 지금까지 활약하고 있다.

남용우의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 ‘성모칠고’ 역시 앞서 소개한 김병기의 ‘십자가의 그리스도’, 김정환의 ‘성모영보’와 함께 가톨릭대학교 전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어 실물 확인이 가능하며 작가의 증언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성모칠고’는 남용우가 대학을 졸업하고 진명여고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던 때에 완성한 작품이다. 당시 서울대 미대 학장이던 장발(루도비코)의 추천으로 성미술 전람회에 출품하게 된 남용우는 학창시절 대작(大作)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스승 장발의 가르침에 따라 당시 출품작도 상당히 큰 규모로 제작했다. 그림을 그릴 종이조차 구하기 어려운 때였지만 규모 있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남대문 시장에서 어렵사리 큰 종이를 구하고 일본에서 공수해온 물감(템페라)으로 작품을 완성했다고 회고했다.

작가는 성모성년을 기념하는 전시의 성격에 맞춰 작품의 주제를 ‘성모마리아의 칠고칠락(七苦七樂)’으로 정했으나 모두 완성하지는 못하고 ‘성모칠고’만 출품했다. ‘성모칠고’는 성모 마리아가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겪게 되는 일곱 가지의 고통을 표현한 작품이다. 즉 △괴로움을 당하리라는 시몬의 예언을 들었을 때 △이집트로 피난을 갈 때 △예수를 잃고 찾아 헤맬 때 △십자가를 진 예수를 만났을 때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앞에 섰을 때 △십자가에서 예수의 주검을 내렸을 때 △숨을 거둔 예수를 묻을 때 겪게 되는 성모의 고통을 한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작품의 구성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화면의 경계가 뚜렷하게 구분되고 있지는 않지만, 중앙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화면 전체가 4개의 세로축과 2개의 가로축으로 나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화면 중앙 전면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자리하고 있고, 그 왼쪽으로는 이집트로 피난을 떠나는 성가족과 피에타, 오른쪽에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와 무덤 속의 예수 그리스도가 4개로 나뉜 화면에 각각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각 장면은 따로 독립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서로 경계를 넘나들며 화면에 여러 층위를 형성하고 있어 공간에 깊이감을 더하며 상호 연결성이 강조되고 있다. 중앙의 십자가로 나뉜 피에타의 장면과 이집트로 피난을 떠나는 성가족 사이를 관통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손, 그리고 화면 오른쪽 두 구획에 걸쳐 절반씩 표현된 예수 성심 등이 이와 같은 화면 구성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성모칠고’는 작가의 해석에 따라 비례가 왜곡된 인체 묘사와 십자가를 축으로 한 화면 분할, 그리고 거친 느낌으로 표현된 질감을 통해 현대적인 면모를 드러내면서도 구상적 표현을 기초로 하고 있다. 당시 점ㆍ 선ㆍ 면ㆍ 프리폼(free form) 등 현대 회화의 기초교육이 중요시되고 추상적 경향이 유행하던 때로 남용우 역시 대학 재학 시절 추상 회화에 대한 연구를 많이 진행했지만, 성화를 그리는 데 있어서는 작가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고 신자들이 더 쉽게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구상적인 표현을 도입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성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 말씀을 기초로 하여 작품을 대하는 이들이 함께 소통하고 기도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에 끊임없이 나 자신을 낮춰야 한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작가가 작품의 구성 못지않게 깊이 고민했던 부분은 화면의 질감, 즉 마티에르(matiere)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당시 매끈한 비단이나 벨벳의 부드럽고 화려한 질감이 아닌 소박한 무명천이 지닌 질박함과 그 안에 내재된 투명성과 오묘한 깊이감을 일깨워준 스승 장발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화면의 질감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성모칠고’를 매끈한 붓질 대신 나이프를 이용해 물감을 겹겹이 쌓아올려서 완성했다. 이러한 파토스(Pathos, 주어진 상황에서 표출되는 감정)적인 표현을 통해 작가는 성모 마리아의 일곱 가지 고통을 보다 직접적이면서도 깊이 느낄 수 있게 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가가 그토록 고민했다는 작품의 마티에르는 지금 제대로 느끼기 어렵게 되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망토와 예수성심을 강조하기 위해서 표현했다는 붉은색도 알아보기가 어렵다.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 작품의 상태가 예전과 달리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증언을 통해 원작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작가의 증언을 들을 수 있을 때 작품이 최대한 원작에 가깝게 보수, 복원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여성 작가의 한국 최초의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이 오래도록 보존되고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정수경(가타리나, 인천가톨릭대학교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9-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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