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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헌생활의 날] 수도생활 60년… “갈수록 좋고, 갈수록 행복해요”

봉헌생활의 날에 만난 사람 / 한국순교복자수녀회 황옥연 베드로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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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26일 서울 예술의기쁨에서 열린 (사)한국가톨릭문인회 신년 감사미사 및 정기총회에 참석한 황옥연(뒷줄 왼쪽) 수녀가 동생 수녀들, 수사신부, 김남조 시인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가톨릭문인회 제공

▲ 올해로 수도회 입회 60주년을 맞는 황옥연 수녀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사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말하며 수줍게 웃는다.



2일은 봉헌(축성)생활의 날이다. 이에 한 생애 오롯이 ‘예수님의 실존과 활동의 기념비’(「봉헌생활」 22항)인 봉헌생활을 통해 복음이 세상에서 풍요로운 열매를 맺도록 기도와 소임, 수행에 정진해온 수도자를 만났다. 올해로 한국순교복자수녀회에 입회한 지 60주년을 맞는 황옥연(베드로, 80) 수녀다. 마침 수도생활 틈틈이 펴낸 14권의 동시집(신작 동시집 포함)을 한데 모아 전집 「고향 마을」(비움)을 발간하고 세상에 띄워 보낸 직후였다. 봄을 기다리는 겨울 햇살, 그 온기가 유난히 부스럭대는 서울 청파동 골목의 수도원에서 그를 만났다.



“내가/수녀원에 오고 나서 엄마는/석 달을 울고 또 울면서도/쫓겨 나올까 봐/마음 졸이셨단다//내가/착복식 하던 날/대례복 입고 벗고/족두리 쓰고 벗고//검은 제복 검은 수건/갈아입고 나올 적에/엄마는 또 울면서도 기도하기를/‘그 옷 입고 관에 들게 하소서’…”

평생 쓴 시 899편 중에 기억에 남는 시 한 편을 골라 달랬더니, 황옥연 수녀는 주저하지 않고 제13 동시집 「풀꽃 밥상」에 실린 ‘우리 엄마’를 꼽는다. 그 엄마에 그 수녀다. 2006년 86세를 일기로 선종한 어머니 윤덕임(체칠리아)씨를 그리며 황 수녀는 2013년 그 신앙의 훈육을 시로 풀었다.

그렇게 산 60년 수도생활을 황 수녀는 어떻게 기억할까? “따스한 봄날 양지쪽 싸리울에 앉은 참새처럼, 아쉬울 것 없이 행복했다”고 그는 고백한다.

소임은 주로 당가(재정 담당)였다. 천안 복자여중ㆍ고 서무로,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총원 총경리 등으로 수십 년을 살았다. 하지만 정작 황 수녀는 숫자를 잘 몰랐다. 은행에 다녀오는 일조차 후배 수녀들이 다 했다. 딱 한 번, 중도금 내러 후배들이 다 써준 서류를 들고 은행에 갔지만, 비밀번호를 몰라 그것도 실패했다. 그런데도 그는 수십 년간 당가를 지냈다. 그 비결은 기도였다.

“38살 때 총원 당가 수녀가 됐는데, 돈이 너무 없는 거예요. 수녀들 학비는 2000만 원이나 필요한데, 수도원에는 80만 원밖에 없었어요. 한때는 너무 배가 고파서 허리를 노끈으로 묶고 다녔어요. 쓰러지지 말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밤하늘을 보다가 ‘저 많은 별 중에 당가 천사가 계시면, 별 하나만 수도회에 주세요’ 하고 기도했더니 제가 상상할 수 없는 돈이 들어왔어요. 그 뒤로는 후배들한테 ‘기도하면 돼요. 별의 당가 천사한테’라고 말하곤 했지요.” (웃음) 그렇게 당가로 사는 동안 황 수녀는 복자여중ㆍ고 건물과 수녀원 생활관을 지었고, 성모자애병원, 지금의 인천성모병원도 키웠다.

소임은 힘겨웠지만, 특히 월간지 「옥잠화」를 창간, 시로 가는 길을 열어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공동 설립자 윤병현(안드레아) 수녀와 부원장 홍은순(라우렌시오) 수녀, 시를 쓰는 동안 문학적 격려를 아끼지 않은 고 윤석중(요한, 1911∼2003)ㆍ김남조(마리아 막달레나, 91) 시인 덕에 황 수녀의 수도생활은 풍요로웠다. 고향 원주 명륜동 뒷산에 떠오르던 초승달과 별, 장독대 분꽃과 어우러지던 산마을과 자연을 노래하며 그는 하느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갔다. 이를테면 신앙과 수도생활, 시작(詩作)이 하나 된 삶이었다.

‘우리 마뗄(Mater, 원장 수녀를 지칭하는 말)’ ‘복자님 초대’ 같은 작품은 당시 수도생활의 기쁨을 노래한 동시였다. “하늘,/땅을 담으신 마음/밀씨 되어/빛 보았습니다//목화송이마다에서/무명실을 지으셨고/심연처럼/관용도 깊으셨습니다//항시 밤이슬이 찰세라/어린 마음 외로울세라/살뜰한 보살핌이/기도하는 마음들에 젖는 햇살…”(‘우리 마뗄’ 일부)

수도생활 중에 떠오르는 대로 쓴 시였지만, 그의 시는 3편이나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눈 온 아침’과 ‘흐린 날’, ‘작은 것’ 등이다. 이뿐 아니라 ‘어느 봄날’과 같이 그의 동시는 퍼져나가 동요로, 노래로 불렸다. 자신의 시가 노래로 불린다는 말이 들려오면, 황 수녀는 “다 좋은 일이지” 하며 웃어넘겼다. 저작권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았다.

너무 쉬워서, 그런데 너무 깊어서 황 수녀의 시는 선시(禪詩) 같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래서 고 정채봉(프란치스코, 1946∼2001) 작가는 황 수녀의 작품 중 선시 풍의 동시만 골라 시집을 내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렇게 쉽고도 깊은 시를 쓰며 수도생활을 해온 그는 원주본당, 지금의 원동 주교좌성당에서 성소를 키웠다. 세례 후 한 번도 새벽 미사를 거르지 않았던 할아버지(황춘서 힐라리오)의 훈육이 부르심의 원천이었다. 할아버지는 매일 같이 새벽 5시면 외아들(황순봉 시몬) 부부와 손자 10남매를 모두 깨워 성당으로 향했고, 이 같은 신앙적 모범이 맏이인 황 수녀를 수도 성소로 이끌었다. 세 여동생도, 남동생도 같은 수도자의 길을 걷는 도반(道伴)이 됐다. 넷째 황숙자(데레사) 수녀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 일곱째 황성연(안나) 수녀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여덟째 황미란(로즈마리) 수녀는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서울관구에서 수도자로 산다. 아홉째 황지연 신부도 예수 성심 전교 수도회에 입회, 수도생활을 한다. ‘한 지붕 다섯 성소’다.

“할아버지가 제일 기뻐하실 것 같아서 수도회에 입회했다”고 술회하는 황 수녀는 원래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에 가려고 했지만, 친구 추천으로 만난 김옥희(안나) 수녀 때문에 평생을 한국순교복자수녀회에 살게 됐다.

“김 수녀님을 만났더니 ‘성녀가 되고 싶지는 않으냐?’고 묻더군요. 해서 ‘어떻게 성인이 돼요?’ 하고 반문하니, ‘누구나 분심과 잡념을 물리치고 사욕을 없애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방유룡 신부님의 말씀을 들려주셨어요.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성인전을 외우다시피 했을 정도로 성녀에게 빠져있던 터라 성인이 되고 싶어 복자회에 오게 됐어요.”

돌이켜보면, 자신의 삶은 “갈수록 좋았고, 갈수록 행복했다”고 황 수녀는 고백한다.

이제 힘겨웠던 소임을 다 내려놓고 기도 사도직에만 몰두하는 황 수녀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수녀원이 행복하다”며 “예수님만 바라보고 사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두가 다 신부 수녀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이런 시가 팔순의 노수녀에 의해 쓰인다. “초가지붕 타고내린/소나기 낙숫물/옴폭옴폭 마당 보조개//새벽 울타리에/봉오리 연 나팔꽃/옴폭옴폭 해님 보조개”(근작 ‘마당 보조개’ 전문)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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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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