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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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대신 장옷 쓴 한복 차림 성모 마리아… 빛으로 충만

[숨은 성미술 보물을 찾아서] (16) 정창섭의 ‘무염시태(無染始胎)’, ‘삼왕내조(三王來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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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섭의 ‘무염시태’는 빛나는 이중의 후광으로 표현되었고 초승달을 딛고 있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도상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1954년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 소개도 어느덧 중반에 이르렀다. 출품 작가 총 23명 중 이번에 소개할 정창섭(丁昌燮, 1927~2011) 작가를 포함해 12명의 작가를 남겨두고 있다. 회를 거듭하면서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 혹은 출품작과 연관된 사항들에 대해 제보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앞으로 추가로 작품을 찾아낼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게 된다.

작품 소개에 앞서 1954년 성미술 전람회 출품 작가의 소식을 하나 전하고자 한다. 네 번째 연재 글에서 소개했던 김병기(루도비코) 화백이 올해로 103세를 맞아 지난 4월 10일에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 ‘Here and Now’를 열었다. 작가의 신작을 함께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생존해 있는 성미술 전람회 출품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회이기에 소개한다.

이번 글에서 소개할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은 정창섭의 ‘무염시태’(無染始胎)와 ‘삼왕내조’(三王來朝)다. 표현주의적 성격을 드러내는 두 작품은 구상 작품이면서도 단순하고 상징적인 요소들로 집약된 화면을 보여준다.



한국 현대미술 형성기 1세대 작가


정창섭은 1927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 1951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해방 후 1950년대 말 한국 현대미술 형성기에 활동한 1세대 화가다. 1961~1993년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했고, 이후 동 대학의 명예교수로 추대됐다.

서구적인 앵포르멜 회화로 출발한 정창섭은 한지의 번짐 효과를 이용한 1970년대의 ‘귀(歸)’ 연작과 닥종이를 캔버스 위에 편 뒤 두드리거나 만져 표현한 1980년대 ‘저(楮)’ 연작에 이어 1990년대에는 금욕주의적 정신성이 돋보이는 ‘묵고(默考)’ 연작을 발표했다. 그는 ‘한지’라는 소재가 지닌 수용적 특징을 통해 정신성을 강조했다.

정창섭의 작업은 ‘닥’이 지닌 고유의 생명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자신을 비우고 잊는 침묵의 상태를 전제로 한다. 이는 정 화백이 평생 일관되게 추구한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정신과 물질 등 이질적 개념이 합치되는 ‘물아합일’(物我合一)의 세계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렇게 그는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한국적 추상 회화를 이루는 데 이바지했다.

이와 같은 소재와 표현에 대한 정 화백의 탐구 정신을 실물 확인이 어려운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에서는 상세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무염시태’와 ‘삼왕내조’ 두 작품 모두 흑백화면을 통해서도 화면의 마티에르가 강조된 화풍임을 알 수 있다.



성모성년 성미술 전람회에 가장 부합

정 화백의 두 점의 출품작 중 ‘무염시태’는 성미술 전람회에 가장 잘 부합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54년 성모 성년이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교의 반포 100주년을 기념한 성년이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했던 안혜택 수녀의 ‘매괴의 성모’에서도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무염시태)의 도상이 표현됐다. 안 수녀의 작품에서는 12개의 별이 빛나는 후광이 강조됐지만, 정창섭의 ‘무염시태’는 별이 생략된 빛나는 이중의 후광으로 표현되었고 초승달을 딛고 있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도상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 상단에는 후광 외에도 밝게 빛나는 태양이 함께 표현되어 빛으로 충만한 화면을 완성하고 있다.

작품 속 성모 마리아는 명확하지 않지만, 머리에 베일 대신 장옷을 쓴 표현에서 한복 차림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인의 모습을 한 성모 마리아는 양손을 가슴에 X자로 모으고 맞은편에 서 있는 작은 여인을 마주하고 있다.

성모 마리아를 우러러보며 장미 꽃다발을 바치고 있는 이 작은 여인은 후광의 표현으로 성녀임을 알 수 있다. 그는 한국의 순교성인일까? 아니면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목격한 베르나데트 성녀를 한국인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일까? 작품 속에 표현된 빛과 색채, 특히 성녀의 손에 들린 꽃다발의 표현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워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 정창섭의 ‘삼왕내조’는 구체적인 사건의 묘사 대신 화면 중앙에 놓인 십자가를 중심으로 동방박사를 상징하는 3개의 왕관과 지팡이 하나만으로 함축적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왕관 3개와 지팡이로 동방박사 표현


정창섭의 다른 출품작인 ‘삼왕내조’는 구체적인 사건의 묘사 대신 화면 중앙에 놓인 십자가를 중심으로 동방박사를 상징하는 3개의 왕관과 지팡이 하나만으로 함축적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삼왕내조는 주님 공현의 이전 표현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공적으로 동방박사 앞에 자신을 드러낸 일을 가리킨다. 과감한 생략을 통한 구성으로 현대적 감각을 보여주는 정 화백의 ‘삼왕내조’는 언뜻 보면 판화기법으로 이루어진 것 같기도 하지만 작품 하단의 서명 형식으로 보아 유화작품으로 추정된다.

작품의 주제로 화면을 지배하고 있는 세 개의 왕관은 동방박사를 상징하며 각각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왕관의 표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두 개는 세 갈래로 갈라진 뾰족관이고 나머지 하나는 동그란 장식이 달린 나지막한 관이다.

작가의 한국적 요소에 대한 탐구의 영향 때문일까? ‘삼왕내조’의 뾰족한 왕관에서 우리의 정자관(程子冠)을,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세 갈래로 나뉜 관의 모습에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삼산관(三山冠)을 자연스레 떠올려보게 된다.



▲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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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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