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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말이올세다”… 순교자 83위 예비심사 재판 기록

사료로 보는 기해박해’ 공개 대학 8 -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증언록」 / 홍연주 박사(이화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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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 증언록」은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 83위의 시복을 위해 1883년부터 1887년까지 열린 교구 예비심사의 재판 기록으로 순교자들과 관계가 있던 신자들의 증언과 순교자들의 생애·순교 행적을 담고 있다.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에 대한 시복시성 작업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들의 시복 추진은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 때부터 시작됐다. 최양업 부제가 라틴어로 번역한 페레올 주교의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들의 행적」은 1847년 교황청 예부성성에 조선 순교자들의 시복 청원서로 접수됐다.

교황청은 이에 1857년 9월 24일 조사 심리를 위한 법령을 제정, 시복 대상자 83위를 가경자로 선포하고, 교황청 수속을 위한 조사 시작 명령을 통보했다. 교황청은 이후 1864년 12월 23일과 1866년 9월 17일 두 차례에 걸쳐 조선에 시복 조사 위임장을 발송했으나, 병인박해로 전달되지 못했다.

교황청은 1879년 5월 8일 ‘한국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에 아무런 장애가 없음’을 선포했다. 교황청의 이러한 결정에 힘입어 조선대목구 부주교 블랑 신부는 1883년 3월 18일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 교구 예비심사를 개정(회기 2차)해 1887년 4월 2일까지 총 102회차에 걸쳐 증언자 42인을 소환해 증언을 들었다. 이후 12년간 시복 조사가 중단됐다가 1899년 5월 19일에 제8대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가 시복 조사를 마무리하고, 시복재판 기록을 라틴어로 번역해 1905년 7월 26일 교황청 예부성성에 제출했다.

기해ㆍ병오박해 시복 대상자 83위 중 79위의 시복이 확정돼 1925년 7월 5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79위 기해ㆍ병오박해 복자들은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다.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 증언록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 증언록」은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 83위의 시복을 위해 1883년부터 1887년까지 열린 교구 예비심사의 재판 기록으로 순교자들과 관계가 있던 신자들의 증언과 순교자들의 생애와 순교 행적을 담고 있다.

현재 서울 절두산순교성지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기해ㆍ병오백해 순교자 증언록」은 총 5권으로 20×32cm 크기의 얇은 한지에 증언 부분은 순한글 궁서체, 선교사들의 서명이나 맹세 등은 프랑스어 또는 라틴어로 돼 있다. 영인본으로는 한국교회사연구소가 펴낸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 증언록-시복재판 기록-」(2권)이, 현대문 윤문본으로는 수원교회사연구소가 펴낸 「기해ㆍ병오 순교자 시복재판록」(2권)이 있다.

내용 구성은 교황청 소장본은 회차 1~회차 121, 절두산 소장본은 회차 2~회차 105로 차이를 보인다. 회차 1은 증인 심문에 필요한 질문 형식 및 절차, 증인 탐문, 회차 2 ~ 회차 102는 증인 심문 내용, 회차 103은 1887년 4월 3일 시복 재판 종결 및 문서 정리, 회차 104는 1899년 5월 19일 르 장드르 신부를 시복 조사 전담 신부 임명, 회차 105는 1901년 5월 19일 드망즈 신부를 시복재판 문서 검사 임명, 회차 106 이하 : 증언 완료 후 그 내용을 확인한 기록으로 돼 있다.



▨사료 가치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 증언록」은 증언자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밝혀져 있다. 순교자들이 어디서 태어나서 어떠한 계기로 신앙을 가지게 되었으며, 어떻게 생활하다 체포되었는지 등이 다른 어떤 자료들보다도 상세하게 나와 있다.

한 명의 순교자에 대해서 대부분 여러 명의 증언자가 증언을 했기 때문에 서로가 보완되고, 다른 점은 다른 자료들과의 비교를 통해 그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 또 순교자들의 신앙에 대한 증언 이외에도 이들이 당시 어떤 경제적 활동을 하면서 생활을 유지해 갔는가에 대한 부분이 이 시기 다른 자료들보다 비교적 자세히 다루고 있다.

신앙의 자유기에 받은 증언이기에, 증언자들이 아무런 외부 위협이나 압력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신분을 정확히 밝히고 당시 상황에 대해 숨김없이 진술할 수 있는 외적 조건이 형성돼 있었다.

하지만 지방에서 순교한 신자들을 포괄하지 못한 점이 한계라 할 수 있다.

정리=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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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5-2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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