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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49) 어느 신부님 ‘생일’ 고백

잘 살아야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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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넷으로 인해 몇몇 정보는 알게 모르게 공유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중에 ‘사회적 네트워크 시스템’(SNS)에 자신의 간략한 정보를 입력한 후 회원 가입을 하면 함께 인터넷상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끼리 정보가 공유됩니다. 특히 생일 같은 경우는 인터넷이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상대방에게 그 사람의 생일이 언제라는 것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회원 가입을 할 때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다 보니, 어떤 경우는 주민등록번호 숫자가 생일 날짜로 둔갑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생일 축하를 해 주는 사람으로부터 축하 연락이 오면, 애써 그 날이 생일이 아니라고 말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어느 날 아는 선배 신부님으로부터 시간 되면 점심 식사를 같이하자는 전화가 왔습니다. 오랜만에 내게 전화를 하신 신부님이라 딱히 거절하기도 뭐해서, 가볍게 차려입고 그 식당으로 갔습니다. 갔더니 식당 구석 작은 방에 신부님과 몇몇 신자분들이 함께 계셨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데 이미 주문한 식사가 나왔습니다. 채소 위주의 점심 식단인데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신부님이,

“강 신부,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모르는데요! 오늘 무슨 날이라 이렇게 모이신 거예요?”

신부님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셨고, 옆에 계신 신자분들은 겸연쩍어 웃고만 있었습니다.

“강 신부, 오늘이 내 주민등록증 생일이야!”

“에이, 생일이면 생일이지, 무슨 주민등록증 생일이 어디 있어요?”

“그건 예전에 내가 SNS를 이용하기 위해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했는데, 그 후로 인터넷 놈이 내 주민등록증 숫자를 생일로 알고 있었던 거지. 그래서 주민등록증 숫자 생일 며칠 전에 나와 연결된 사람들에게 내 생일 축하해 주라고 메시지가 뜬 거야. 그런데 그중에 여기 계신 신자분이 알게 된 것이지. 그래서 오늘 이 신자분들이 나의 주민등록증 생일을 축하해 주려고 번개 모임을 한 거야! 케이크도 사 놓고. 그래서 사실을 이야기했지. 내 생일은 다른 날이라고. 그래도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말도 있고, 뭐 그래서 식사 같이하는 거야. 그런데 실은 말이야, 사제들은 기본적으로 기억해야 할 날들이 많아서 은근히 신자들에게 신경 쓰이고,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본당 신부 영명 축일, 사제서품 기념일, 성 목요일 성유축성미사의 사제의 날, 예수성심대축일, 그리고 이렇게 못난 주임 신부 생일. 암튼, 신자들이 이리 기억해 주는 만큼 우리 신부들은 늘 감사하며 잘 살아야 해, 암! 잘 살아야지.”

“그럼 오늘 신부님 생일이 아닌가요?”

“야, 신부로 살다 보니 생일은 언젠지도 몰라. 그런데 내 생일 전날이 되면 아버지가 전화를 하셔.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어이, 내일 너 생일이니 집으로 와서 밥이나 먹고 가라. 너 낳고 키우느라 우리 생고생했으니, 네가 집으로 와!’ 그러면 ‘예’하고 집에 가는 거지. 그리고는 늙은 어머니가 해 주시는 미역국에 밥 한 그릇 먹고 그냥 돌아와! 그런데 마음은 진짜 감사하고, 또 짠해지지….”

사제란 신자들이 기억해 주고 기도해 주는 만큼 잘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건 그 사제들이 날마다 기억하는 예수님을 닮기로 결심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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