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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복음] ‘죽음’의 신비

연중 제31주일·위령의 날(마태 11,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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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형 신부(서울대교구 성소국장)

우리는 신앙 안에서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 함께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내일의 과거이고, 오늘은 어제의 미래입니다. 우리는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천국에 있는 성인들은 지금 우리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다 다스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부른 적이 있습니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 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저도 군대 생활을 했습니다. 군 생활은 무척 힘들고 고달팠습니다. ‘선임병들의 기합, 아침 일찍 일어나는 기상 시간, 행군, 훈련, 늦은 시간의 보초, 내무반 생활’은 군인들에게는 힘든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야 하는 것과 생의 가장 젊은 시간을 통제와 규율이 엄격한 조직에서 보내는 것이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군대를 제대한 지 26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군 생활은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훈련과 단체 생활을 통해서 인내와 끈기를 배웠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은 건강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군대에서 타자도 배웠고, 틈틈이 공부했던 영어는 나중에 커다란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위령의 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신 분들은 늙은 군인의 노래처럼 무엇을 하였건, 무엇을 바랐건 모두 땅속에 묻혔습니다. 그분들의 꽃다운 청춘도 바람 따라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그들 모두는 지금 우리처럼 희로애락을 겪었고, 생로병사의 과정을 통해 하느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어떤 이는 건강하게 바라는 것을 이루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아무도 찾아 주지 않는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아주 건강하게 살다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죽음을 맞이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직업이 많은 것처럼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참 많다고 생각합니다.

신앙 안에서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또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세상에서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였다고 해도, 세상에서는 고통과 절망의 삶이었다고 해도, 벌을 받고 고난을 받는 것 같다고 해도,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평화를 누리고, 진리를 깨닫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 선택하신 분들을 돌보아 준다고 믿습니다.

군 생활을 마치고, 제대할 때의 기분은 하늘을 날 것같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자유로운 생활이 있고, 가족들을 만날 수 있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 안에서의 죽음은 군대를 제대하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라고 말을 합니다. 세상에서 어떠한 삶을 살았다 해도 주님을 믿으면 주님께서는 위로를 주시고, 힘을 주신다고 믿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제 세상을 떠나 머나먼 미지의 세계로 가야 하는 이들에게는 진정한 위로가 되고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위령의 날을 지내는 것은 주님의 이 가르침이 살아 있는 우리에게도 힘과 용기를 주지만,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도 똑같은 위로와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죽음으로써 죽음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죄가 죽음으로 지배한 것처럼, 은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의로움으로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위령성월에 죽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성화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것은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면 자연히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 묵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들이, 현재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과연 영원한 삶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오히려 영원한 삶에 장애가 되는가를 묵상할 수 있게 해줍니다. 위령의 날을 지내면서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이 천상에서 영원한 삶을 살아가도록 기도합니다. 남아 있는 우리도 지상에서의 삶을 충실히 살아, 천상의 기쁨을 함께 누리도록 기도합니다. “주님 죽은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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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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