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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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내가 너희들 ‘엄마’다

이경숙 (로사리아, 서울소년원 예비신자 교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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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숙 (로사리아, 서울소년원 예비신자 교리교사)




“엄마, 1주일 동안 잘 지내셨어요? 오늘도 버스 네 번 갈아타고 오셨죠?”

민수다. 창문으로 고개만 빠꼼히 내밀고 인사한다. 다른 때와는 사뭇 다르다. 비비적대고 장난치고 덤비고…. 내게 온갖짓을 다 하는 아이가 새삼 뭐가 부끄럽겠는가. 선생님을 별안간 엄마라고 부르려니 낯이 간지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충동적으로 그리 부른 건 아니리라. 앞으로 엄마라고 불러야지, 오래오래 생각했을 것이다.

민수는 교리수업을 모두 받았지만 세례를 받지 못했다. 엄마 핑계를 대며 세례식 날, 세례를 거부한 것이다. 거짓말인 줄 알지만 달리 구제할 방도가 없었다. 민수가 대부분의 기도문을 외우지 않았다는 걸 아신 신부님께서 꼭 외워야 하는 기도문 몇 개라도 다섯 번씩 써오라고 했는데 민수는 그것도 안 해왔다. 비록 범죄를 저지르고 소년원에 들어왔지만 민수는 그저 열일곱 아이다. 기도문 때문에 세례를 받지 못할 줄 알고 서둘러 거짓부렁을 해놓고서 끝내 수습을 못 하게 된 것이다.

세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민수의 모습은 몹시 어둡고 침통했다. 얼결에 한 거짓말 때문에 홀로 낙오됐으니 마음 밭이 가시덤불이었을 것이다. 세례를 받는 친구들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버럭버럭 화를 냈다가…. 한 시간 내내 난리가 아니었다. 그러다 미사 중에 난데없이 머리통을 들이밀며 안수해 달라고 한다.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란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꾹 눌러 참고 희한한 풍경을 연출했다.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을 보면 참 재밌다. 시나브로 호칭이 달라지는데 그게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물론 나갈 때까지 ‘쌤’을 고수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은 ‘선생님(쌤)’에서 ‘어머니’로, 그리고 종국에는 ‘엄마’로 부른다. 엄마의 사랑을 많이 못 받은 아이일수록 더 그렇다. 엄마가 그리운 것이다. 엄마 정이 그리운 것이다.

그래, 내가 너희들의 엄마다. 그래서 날마다 가슴팍이 뻐근하고 아린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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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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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열어라, 정의의 문을. 그리로 들어가서 나 주님을 찬송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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