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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사이야기] (5) 순례 끝? 진정한 순례의 시작!

이영균(멜키아데스) 서울 목5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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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임하소서, 내 마음에. 암흑에 헤매는 한 마리 양을….”

2015년 6월 4일 정오. 스페인 산티아고 대성당에 꽉 들어찬 세계 각국의 신자들은 수녀님의 선창에 따라 성가 151번을 불렀다. 한구석에서 성체를 모시던 나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가눌 수 없었다. 주님, 감사합니다. 성 야고보님, 제가 왔습니다.

나는 2015년 5월 5일 프랑스 생장을 출발하여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800㎞를 31일에 걸쳐 걸었다. 나이 들기 전에 이 순례 길을 걷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70세를 2년 앞두고 먼 길을 나섰다. 하루에 짧게는 20㎞, 길게는 40㎞를 11㎏의 짐을 지고 걸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었고, 끝없는 밀밭의 지평선을 밀고 나가는 메세타를 걸었으며, 흐드러지게 만개한 붉은 개양귀비 꽃밭과 포도밭을 지났다. 지나는 크고 작은 성당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무릎 꿇고 주님과 성모님께 인사하였다. 그리고 성당의 저녁 미사로 하루하루를 끝냈다.

뙤약볕의 더위와 갈증, 시큰거리는 무릎, 어깨를 누르는 배낭, 세계 각국의 코골이 합주와 허공에 뜬 듯한 2층 침대 잠자리 등으로 힘이 들었다. 나는 지치고 힘들 때마다 성가 151번을 불렀다. 그리고 묵주 기도와 화살 기도를 바쳤다.

‘주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 야고보의 순례길을 걸을 수 있도록 건강을 주시고, 시간을 주시고, 경제력을 주셨음에 무한 감사드립니다. 끝까지 쉬지 않고 걷겠습니다.’

성가를 부르고 기도하고 나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광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욱 크게 일어났고 빠졌던 힘이 다시 생겨 잘 걸을 수 있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는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정오에 있다. 순례자와 관광객과 현지인 등으로 성당은 입추의 여지가 없다. 800㎞의 까미노 데 산티아고(성 야고보의 길)를 하루도 쉬지 않고 건너뜀 없이 31일 만에 무사히 걸은 나로서는 무척 의미 있는 미사였다. 그런데 미사 전에 수녀님이 성가를 지도하시는데 내가 그토록 힘들고 지칠 때마다 매일 불렀던 성가 151번이 아닌가. 지금 순례를 마무리 짓는 미사에서 내가 매일 불렀던 성가가 오늘의 성체 성가라니. 나는 미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가슴이 메어왔고 눈물이 핑 돌기 시작하였다.

성가 가사 ‘오 내 주 천주여 받아주소서’와 함께 성체를 모셨다. 다시금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리고 피레네 산맥을 넘어 처음 도착한 스페인의 론세스바에스의 저녁 미사에서 신부님이 우리말로 ‘주님은 당신도 아십니다’라고 하신 축복의 말씀이 다시 들렸다. 이 미사 중에 나를 알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신 주님 앞에 나는 부끄러워 움츠러들었다. 중앙 돔에 매달려 그네를 타는 대형 향로 보따푸메이로의 향이 내리며 온몸에 전율이 스쳐 지난다.

2015년 6월 4일. 산티아고 대성당 미사를 끝으로 나의 800㎞ 순례도 막을 내렸다. 성당 문을 나서며 유난히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기도하였다.

‘사랑의 주님, 용서의 주님, 자비의 주님. 주님이 저를 알고 계시듯 저도 주님을 더욱 알게 하소서. 주님이 저에게 오셨듯이 저도 주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하소서. 주님을 찾아가는 저의 순례는 이제 시작입니다. 아멘.’



※‘나의 미사 이야기’에 실릴 원고를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8매 분량 글을 연락처, 얼굴 사진과 함께 pbc21@cpbc.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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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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