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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사이야기] (9) 미사 중에 받은 은혜

이순아(도미니카)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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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 년 전, 어느 신부님께 제가 한 마리 구더기 같다고 고백을 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신부님께서는 ‘이제 광야 40년이 시작되겠군’ 하고 조그만 소리로 말씀을 흘리셨습니다. 이후부터 제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그 신부님 원망은 한 번도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내면에서 구더기 사건이 또 일어난 것입니다.

그때 느낌으로는 제가 한 마리 구더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훨씬 흘러 나이 많은 여자가 된 지금은, 가슴에 구더기가 들끓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그때 문득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로 던져라”(요한 8,7)는 주님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해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는 복음 말씀이 떠올라 쓴웃음을 짓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사에서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제 큰 탓이옵니다’ 하는 고백기도를 바치던 중, 물안개 속을 걷고 있는 희미한 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차츰 말씀 전례, 성찬 전례를 통해 죄인인 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까마득한 먼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책장을 넘기듯 넘어가는 한 장면 한 장면이 감은 눈 속에서 펼쳐졌습니다. 순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미사가 끝날 무렵에는 성령께서 하느님의 존재를 체험한 ‘총고해’의 은혜를 주셨다는 믿음으로 감사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드디어 제게도 2017년 부활이 왔습니다. 이른 새벽 비몽사몽 간에 주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웃기지 마라 도미니카! 네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나는 네 구원을 위해 너와 항상 함께 있을 뿐이다. 그러니 매일매일 기쁘게 살아라.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너는 자의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이는 말씀을 통한 제 마음의 소리였는지 모릅니다.

그즈음 건강이 받쳐주지 않는데도 그분을 위해 늘 무언가 해야 한다는 욕심을 내려놓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또 하나의 위선이었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글을 쓰면서도, 내가 살기 위해 기도를 하면서도, 나는 늘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오만함으로 부자연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자기를 받아들이는 자연스런 삶! 그분은 저에게 그런 삶을 원하셨을 것입니다.

이후 저에게 변화가 생겼습니다. 무언가 잘못하고 씩 웃는 어린아이 같은 계면쩍은 웃음이 일상에서 떠나질 않고 있습니다. 그분은 질그릇인 나를 깨부수고, 그 안에서 흥부가 켠 박 속의 보화같이 극적으로 ‘짠’하고 나타나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의 미사 이야기’에 실릴 원고를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8매 분량 글을 연락처, 얼굴 사진과 함께 pbc21@cpbc.co.kr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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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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