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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고해소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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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그렇지 않지만, 과거 신부들이 적었던 시절에는 자정이 되도록 판공 성사를 주는 일이 흔했다. 고해소는 일반적으로 세 개의 방으로 돼 있다. 가운데 방에는 신부가 있고, 신자들은 양쪽 방을 사용한다. 신부는 내부에서 양쪽으로 나 있는 작은 미닫이창을 열고 닫으면서 성사를 준다. 신자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 하도록 창문은 흰 천으로 가려 놓는다.

판공성사 때마다 이름 모를 그 자매가 생각난다. 성탄 판공성사를 줄 때였는데, 어느덧 시간은 자정을 넘겼다. 문을 살짝 열어 밖을 살피니, 다른 신부들은 파장하고 나만 남았다. 거의 4시간 넘게 꼼짝 않고 성사를 주니 슬슬 피곤하고 졸리기 시작했다. 판공성사에 더 집중하려다 보니 얼굴을 흰 천에 더 가까이 대게 됐다.

그러다가 한쪽 문을 여는 순간, 화장을 곱게 한 아줌마 얼굴이 내 얼굴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거의 눈과 눈이 닿을 정도였다. 순간 나도 깜짝 놀라고 자매도 놀랐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할 말을 잃고서 미닫이문을 황급히 닫아버렸다. 그리고선 곧바로 폭소바닥이 됐다.

그 자매는 창을 가려놓은 흰 천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얼굴을 창에 집어넣은 채로 웃고 있었다. 자매는 흰 천을 미사보로 생각했고, 그걸 뒤집어써서 성사를 보는 줄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려 신부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으니 본인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마터면 입 맞출 뻔 했다고 아쉬워(?) 했다.

그런데 자매 얼굴이 창문에 꼭 끼었다. “에고, 신부님! 얼굴이 안 빠졈수다.” 우여곡절 끝에 얼굴을 빼고 자매와 한참을 웃으며 시간을 보내니 피곤함은 사라지고 따뜻함이 찾아오더라. 하늘나라는 좁은 문이라고 했던가! 신자들은 네모난 창에 얼굴을 집어넣는데 신부인 나는?





이시우 신부

제주교구 애월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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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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