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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김상원 아우구스티노(코리아 팰 오케스트라 사무총장)

잊을 수 없는 감동의 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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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임시 수도가 된 부산에서 피난민 친구의 권유로 천주교에 입교했다. 이후 1970년대엔 부산 대연동본당에 다녔다. 당시 주임 신부는 이탈리아 분이셨다. 미사 후 평화의 인사 시간에 신부님은 제단 위에서 내려와 미사에 참여한 모든 교우 한 분 한 분을 손잡아 주며 평화의 인사를 나누셨다. 난 그때 감동을 받았다. 주님의 온기를 느낀 것이다.

1980년대엔 서울로 이사해 응암동본당 교우가 됐다. 당시 보좌 신부님이 새로 부임했다. 보좌 신부님은 평화의 인사 시간에 “교우님들 오늘 미사 참례 오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앞, 뒤의 교우들은 이웃이며 다 같이 주님의 자녀입니다. 즐겁게 인사 나누십시오”라고 하셨다. 교우들은 처음 겪은 일이었다. 서로 계면쩍어하면서도 주변에 앉은 신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 후 평화의 인사 시간에 인원을 정해 주면서 “여덟 분과 인사 나누십시오”라고 하셨다. 또 주님의 기도 시간에는 옆 교우와 손잡고 큰소리로 노래하며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2000년엔 서대문 가재울본당으로 교적을 옮겼다. 새로 부임한 신부는 평화의 인사 시간에 “교우님들 오른쪽으로 돌아서십시오. 지금 앞에 계시는 교우분의 등을 두들겨 주십시오. 일주일간 고생했다는 인사로 드리시며, 교우님들 다시 뒤로 돌아서십시오. 지금 앞 분의 등을 두들기시며 반갑다는 인사도 나누십시오”라고 하셨다. 미사에 참여한 교우들은 크게 감격했다. 그 후 미사 때는 으레 옆 교우의 등을 두들기며 기쁨 가득 미사에 참여했다.

그 신부님이 은경축을 맞았다. 신부님은 성가대에 요청하기를 “은경축 기념 미사 때 미사 곡을 원래 가사로 하되 곡은 우리 민요, 가곡, 가요, 동요 등에서 마음대로 정해 성가를 불러 주십시오”라고 했다. 성가대는 신부님 요청대로 자비송, 영광송, 거룩하시도다, 하느님의 어린양 등을 가사는 그대로 두고 ‘진도 아리랑’, ‘노란 샤스의 사나이’, ‘보리밭’ 등의 곡에 맞춰 불렀다. 하나의 파격이었다. 이럴 수도 있구나. 은경축을 축하하러 온 손님들 그리고 본당 신자들 역시 감동했다. 국경일, 기념일 등이 있는 날이면 퇴장 성가를 기념일에 맞춘 노래로 부르는 본당도 있다고 한다. 설에는 ‘까치 까치’ 노래를, 3ㆍ1절에는 ‘기미년 3월 1일’, 어버이날에는 ‘어머님 은혜’ 등의 노래를 합창하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봉헌한 미사도 잊을 수 없다. 가톨릭 노동청년회에서 활동하다 장년회로 옮겼을 때다. 벨기에에서 국제대회가 있어서 한국 대표단 일원으로 유럽에 간 적이 있었다. 국제 대회를 마치고 오스트리아 빈으로 갔는데, 주일이라 현지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성 스테파노 성당이었는데 2차 세계대전 때 완전히 파괴됐다가 교우들 힘으로 재건축한 성당이라고 했다. 미사 중엔 2층 성가대에선 성가가 화음으로 흘러나왔다. 성가대원들이 누구일까 궁금해 살금살금 2층으로 올라갔는데, 40~50명 되는 단원들이 모두 백발이 성성했다. 어르신들로 구성된 성가대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요즘 우리나라에선 성가대 존립이 어렵다는 얘길 듣는데, 그럴 때마다 백발 단원들로 구성된 그 성가대가 생각나곤 한다.



※‘나의 미사 이야기’에 실릴 원고를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8매 분량 글을 연락처, 얼굴 사진과 함께 pbc21@cpbc.co.kr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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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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