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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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사이야기] (32) 침묵 안에 계신 하느님

강성호 노엘 수원교구 원곡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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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이 40이 되던 해인 1992년 4월 주님부활 대축일에 세례를 받았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이 성당에 다니고 있어서 나도 성당에 다니고 싶었다.
 

교리교육은 쉽지 않았다. 예비신자 교리를 6개월 받고 찰고 때 기본 기도문 10가지를 외울 수 있어야 통과가 되는 것이었다. 사도신경과 주님의 기도 두 가지만 외울 수 있었다. 내가 기도문을 외우지 못하므로 수녀님은 신부님께 데리고 가 “이 형제는 기도문을 외우지 못하여 통과하지 못하였다”고 보고했고 신부님은 “직장생활을 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며 성당에 다니면서 기도를 많이 하면 자연스럽게 외워질 거라며 통과를 시켜주셨다.
 

세례를 받고 성당을 다녔으나 특별한 감동은 없었다. 신앙생활이 무미건조하였다. 미사 시간은 지루하게 느껴져 미사 시간 내내 주보를 뒤적이곤 했다. 신부님 강론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성체성사는 형식적인 예식의 하나로만 생각됐다. 창조주인 하느님이 계신다는 믿음도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주일 미사에 가는 것이 의무처럼 느껴졌고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냉담도 하게 됐다. 판공성사 때 냉담을 풀기 위해 고해성사를 보는데 내 죄는 오직 주일 미사를 드리지 않은 것뿐이었다. 내 의식에서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타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은 죄가 되지 않았다. 죄의 유무를 내가 판단했다. 성사를 보고 나서도 마음은 개운치 않았고 여전히 신앙생활은 전과 같았다. 그러나 내 양심은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뇌성마비 지체장애자인 아들을 두고 있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을 둔 부모들은 막연히 자식의 장애가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과 함께 ‘하필이면 우리 자식’이라는 생각으로 하느님을 원망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날 밤 자식 생각 때문에 잠 못 이루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어떤 음성이 들려 왔다.
 

“네가 마음이 아픈 것처럼 나도 마음이 아프다”고. 그 목소리는 애절하고 다정다감한 목소리였다. 그 순간 창조주인 하느님께서 이 보잘 것 없고 죄 많는 나의 슬픔에 함께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느님 사랑에 가슴이 터질 것같아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지금까지 지은 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내가 용서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님께선 회개의 은총으로 나를 이끌어 주셨다.
 

그날 처음으로 새벽 미사에 갔다. 1월 추운 겨울이었는데도 성당 안은 따뜻했고 마음은 평안했다. 미사 내내 돌아온 탕자를 반갑게 맞아주시는 하느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분께서는 나를 보듬어주시며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고 말씀하시는 듯 했다. 기도가 하느님과의 대화라면 미사 참례는 아버지를 직접 뵈러 아버지 집에 가는 것이다. 사제의 축성을 통해 강생의 신비를 몸소 보여주시고 나와 함께 사시기 위해 내 몸에 오신다. 토마스 사도에게 옆구리에 난 상처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보라고 하신 것처럼 나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 당신의 숨결로 당신의 현존을 느끼게 해주신다. 하느님은 침묵 안에 계신다. 자기 비움을 통한 침묵으로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탁할 때 그분의 생명이 내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미사는 돌아온 탕자에게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잔치를 베풀어 주시며 반지를 끼워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인격적으로 체험하는 하느님 사랑의 체험장이다. 내가 그분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나의 탐욕과 교만의 구름이 그분의 빛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안다. 내가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앞으로도 유혹에 넘어지고 또 넘어질 것이다. 그때마다 그분께서는 나를 일으켜세워 주실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영원하시다 .


※‘나의 미사 이야기’에 실릴 원고를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8매 분량 글을 연락처, 얼굴 사진과 함께 pbc21@cpbc.co.kr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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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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