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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15)묻지 않은 질문에 답하는 어른들 안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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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수녀들과 몇몇 장년층이 모여 젊은이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신들의 근심 걱정을 글로 쓰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에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한 여고생이 친구도 없고, 학교에 적응하기도 어려운데 부모님마저 자주 싸움을 하니 죽고 싶다며 흐느꼈다. 그때 많은 사람이 함께 울며 위로하던 그 순간은 참으로 감동적으로 기억된다. 그러면서 한 40대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여고생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젊은이와 장년들이 진지하게 대화하는 분위기는 젊은이들 중심에서 고통에 공감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적지 않은 젊은이가 대화 시간에 어른들이 자신들의 말만 했다고 피드백했다. 당혹스러웠다. 도대체 우리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한 것일까? 그래서 나는 그날 오간 이야기를 몇 번이고 곱씹으며 기억했다. 젊은이들의 진솔한 고백이 있었다. 그리고 수녀들은 그들의 말에 공감하면서 이런저런 사례를 이야기했고, 장년들도 복음의 빛에 비춰 청소년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표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순간 시노드 준비 모임에 참석했던 한 수녀의 말이 생각났다. “젊은이들은 어른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묻지 않는 것에 답하는 어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들이 묻지 않은 질문에 답을 주면서 또 하나의 ‘교과서’를 내밀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고민했어야 했다.

물론 교육자나 부모들은 오늘의 청소년들이 어디로 가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관심이 많다. 그리고 정말로 그들을 도와주고 싶다. 더욱이 살레시오 수녀인 나는 청소년 문화를 연구하고 강의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은 모임에서 그들의 원의를 알아채지 못하고 내 말만 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그저 공감해주고 들어주고 같이 아파해주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딱 거기까지만 해야 했다.

젊은이들이 원하는 어른은 세모난 아이에게는 세모가 되어주고 네모난 아이에게는 네모가 되어주는 형태 없는 물의 모습이다. 물은 맛이 없지만 맛을 내고, 색이 없지만 색도 내며, 형태가 없지만 형태를 만들 수도 있다. 밥에 넣으면 밥이 되고 빵에 넣으면 빵이 되는 그런 어른처럼 해주기를 바란다. 젊은이들 속에 들어가면 그들처럼 같이 방황하고, 같이 울어주고, 같은 곳을 바라봐주었으면 한다. 젊은이들은 자기들과 다른 자리에 앉아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어른들의 과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어른들의 과거는 청소년의 미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어른들의 미래가 청소년의 과거가 되어가는 시대다. 우리는 변화하는 이 시대를 머리와 가슴으로 공감하는 데 매우 더디지만, 그들은 자연스럽게 공기처럼 숨을 쉬며 살아간다. 그러니 우리가 청소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과 함께 잠기는 물이 되는 것이다.

유례없는 변화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 변화는 위에서 아래로 전수하는 것이 아닌 비선형적이고 산발적이며, 사방으로 흩어져 산만하기까지 하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 있는 젊은이들은 문자를 읽듯이 언어나 논리에 마음을 두고 소통하기 어렵다. 영상처럼 불연속적이고 강한 자극에 반응하는 문화에서 소통하는 데는 느낌과 감정이 너무도 중요하다. 그래서 어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보다는 어른들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가 젊은이들에게는 더 큰 소통의 열쇠인지도 모르겠다.

젊은이들에게 ‘다 너희를 위해서야’, ‘미래에 도움이 돼’라는 말을 하지 말자. 단지 그들이 우리의 진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겸손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물 같이 부드럽고 유연하게 스며들어 그들 속에 잠길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그들의 눈높이에 서서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성찰하기



1 청소년에게 온전히 집중하면서 나는 이 시간 동안 너만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줘요.

2 젊은이와의 대화 도중 말보다 긍정적인 비언어(표정, 몸짓, 손짓)로 반응해줘요.

3 답변이 필요할 때는 짧게, 대화가 계속 이어지도록 나의 이야기는 가능한 한 자제해요.

4 아무리 바빠도 청소년 스스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도록 해요. “이제 말 다했니?”라고 묻기보다 “또 할말이 있니?”라고 물어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8-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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