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일까요? 끔찍한 자극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공포영화, 커다란 피해를 주는 자연재해, 고통을 가져다주는 각종 질병, 어렵고 힘든 직장생활 등 우리 삶에서 무서운 것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무서움은 우리 모두에게 슬픔을 가져다주는 ‘죽음’이 아닐까요?
과학자들은 인류의 기원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137억 년 정도로 봅니다. 137억 년 전인 빅뱅의 순간부터 지금까지 1초도 쉬지 않고 지구 상의 모든 것은 죽음을 통해 소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어떤 것보다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시간입니다. 시간은 그 어떤 것도 예외 없이 소멸시키는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간이 가장 무섭다면서 벌벌 떠는 사람이 있습니까? 또한, 무서운 시간과 함께 살 수 없다면서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가장 무서운 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어떤 것이 우리를 두려워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가장 무서워할 수 있는 것은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하면서, 정작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무서워하는 것을 우리는 거뜬하게 이겨낼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힘을 깨닫지 못하고 또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족함과 나약함처럼 별것도 아닌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착각 속에서 힘들어 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어놓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까?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세례의 형식으로 표현되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가르침을 제자들 손에 맡기십니다.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주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도록 하시지요.(마태 28,19-20 참조)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세상 안에서 더욱더 힘차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성부, 성자, 성령이 자신의 역할만 강조하며 따로따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친교와 일치를 이루어 우리 인간들에게 완전한 사랑을 전해 주신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이렇게 함께하시는데, 하물며 우리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렵고 힘들어하는 이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며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제1독서에서 모세는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신명 4,40)고 말합니다. 그 규정과 계명이 바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직접 보여주신 사랑이었습니다. 내 한 몸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온 세상의 많은 만남을 통해서 내 한 몸을 유지하게 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것임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다른 이들과 일치와 친교를 이루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사랑으로 하나가 되심을 기념하는 삼위일체 대축일인 오늘, 우리는 과연 나의 이웃들을 얼마나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바라보았는지를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친교와 일치를 이루면 이룰수록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본받아 따르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제2독서의 사도 바오로 말씀처럼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면서 상속자가 될 수 있습니다.(로마 8,17 참조)
여전히 세상은 어둡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계시기에 우리의 세상은 결코 어둡지 않습니다. 고통과 시련으로 가득한 세상이 아닌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한 세상, 그러한 세상을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선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