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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사이야기] (45) 가장 저렴하지만 최고의 환갑 선물

박수자 카리타스 수원교구 과천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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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많이 변했다. 환갑이라는 말이 슬슬 사라져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때가 오려나?

나 역시 환갑이 뭐 벼슬이냐 대범하게 생각했는데 실제로 환갑이 되니 그냥 넘어 가기가 슬그머니 서운했다. 육십 년 살아온 나 자신과 가족에게 감사하고 무엇보다 이제껏 살아오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싶은 일석삼조의 효과를 보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지만 내 형편은 딱했다.

우선 치매 걸린 시부모님 두 분을 돌봐야만 했다. 돈도 사실 없다. 은퇴하기 전인 남편이 혼자 버는 돈으로 시부모님과 우리는 쥐어짜며 살아야만 했다. 내 팔자가 그렇지. 혼자 맘 속으로 서운함을 삭였다.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가 너무 서운해 외국에 사는 아이들에게 “엄마 환갑인데 니들 아니?” 하고 전화로 물었다. 아이들이 “예” 하고 대답했다. 아이들이 잊지는 않고 있구나. 서운함이 조금은 풀렸다. 며칠 후 택배가 왔다. ‘최후의 만찬’ 20호 정도 크기의 이콘 성화였다. 아이들이 보내 준 환갑 선물이다. 갖고 싶었지만 구하기 힘들어 바라보고 침만 흘렸던 성화. 날아갈 듯 기뻐 남편에게 거실 벽에 성화를 당장 붙여 달라고 했다.

남편과 둘이서 무거운 성화를 붙이느라 반나절을 낑낑거렸다. 남편이 물었다. 환갑 선물 뭐 해줄까? 난 남편보다 연상이다. 아직 남편은 환갑이 먼 나이인데 남편이 내 나이를 기억은 하고 있었구나. 나는 남편에게 “나랑 같이 미사 가자”고 했다.

남편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실 남편은 혼배 미사를 드린 후 30년가량 냉담 중이었다. 남편은 주말이면 종일 잠을 자거나 사람들 가르칠 공부를 준비하지 않으면 회사 접대용 골프만 갔다. 내가 성당 가는 것을 말리지는 않았지만 자신은 완전히 담을 쌓고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성당에 부부가 같이 오는 모습은 참으로 부러웠고 혼자만 미사에 참여하는 내가 하느님께 무척 죄송했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남편과 같이 주일 미사만이라도 참여하면 얼마나 좋을까? 남편에게 성당 가자는 말을 했다가 매번 대판 싸움으로 번졌기에 아예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남편은 선물을 다른 것으로 하자고 했다. 나는 버텼다. 나에게 정말 환갑 선물을 해주고 싶다면 미사를 선물로 해달라고. 남편은 대신 딱 홀수 일요일만이라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약속했다. 그렇게 남편은 엉겁결에 나와 같이 홀수 주일만 미사에 가기로 환갑 선물을 해줬다. 그런데 나는 언제까지라고 기간을 못 박지 않았다. 살아 있는 동안 유효한 나의 환갑 선물은 신의 한 수였다.

남편과 같이 미사 참여를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넘는다. 처음에는 홀수 주일만 고집하던 남편은 짝수 주일에 가자고 해도 못 이기는 척 옷을 입고 따라온다. 성탄 밤 미사도 낮 미사도 연달아 같이 드렸다. 성주간 미사도 성야 미사도 그 다음날 부활 대축일 미사까지도 같이 드렸다. 판공성사도 보았다. 매일 미사는 직장 때문에 못해도 가끔 같이 간다.

남편은 어느새 냉담을 풀고 하느님 앞으로 나와 같이 가고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은 환갑 선물이 있던가? 일회성 선물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유효한 선물이니 아니 좋을 수 있나?

나이들면서 부부가 하느님 잔치인 미사에 초대받아 같이 갈 수 있음은 분명 은총이다. 다이아 반지도 아니고 현금다발도 아니고 유럽 여행도 아니고 단지 주일 미사 선물만 받았는데 나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 나의 환갑 선물은 돈 한 푼 안 드는 가장 싼 소원인데 남편과 함께 성체를 모시는 미사의 값진 은총을 받으며 세상에서 천당까지 이어주는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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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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