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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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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99) 20세기 ③ - 독립 학문으로서의 영성신학

‘영성’이라는 새 옷 입은 그리스도인의 영성생활

▲ 과도한 수덕생활과 신비생활에서 발생한 이단으로 사람들은 '수덕', '신비'라는 단어에 경계심을 나타냈다. 교회는 '영성'이라는 새로운 단어 사용으로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을 편견 없이 전달하고 영성을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전환점을 마련한다. 사진은 미사 집전을 위해 입당 전 제의를 입는 사제의 뒷모습. 가톨릭평화신문 DB



20세기 가톨릭교회는 '영성'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17세기 과도한 수덕생활과 잘못 이해한 신비생활에서 발생한 이단 때문에 '수덕'과 '신비'라는 용어에 경계심을 나타내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을 편견 없이 전달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조직신학에 포함되었던 영성신학

'영성(spirituality)'이라는 단어는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교회 안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됐습니다. 물론 라틴어 명사 'spiritualitas(영성)'가 이미 5~6세기에 사용됐지만, 학문 분야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들어서였습니다. 프랑스 학계에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spiritualit(영성)'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영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전부터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을 지칭하기 위하여 수덕생활, 신비생활, 내적 생활, 신심생활, 완덕의 삶 등 다양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용어는 그리스도인이 삶 안에서 영적 여정을 걸어가는 실천적인 모습을 성찰할 때에 사용하기 적절한 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이 이론적인 체계를 갖춘 학문 연구 분야에서도 성찰돼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영성생활이 이단에 물들지 않고, 가톨릭 정통 신앙 안에서 올바른 영적 여정을 향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5세기 말경에 위(僞)디오니시우스(Pseudo-Dionysius, 500년경)가 저서 「신비신학(De Mystica Theologia)」을 저술하면서 교회 안에서 하느님을 향한 영적 여정에 대한 학문적인 관점이 알려졌으나,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중세 중기, 유럽에서 대학이 설립되고 세상 학문들이 발전하기 시작할 무렵에 가톨릭교회도 스콜라신학을 마련하면서 하느님을 알아가는 신학도 세상 학문과 동일한 체계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가톨릭교회는 교의신학과 윤리신학을 포함하는 조직신학의 틀을 마련했으나, 영성신학은 조직신학에 포함됐고, 영성신학의 일부 주제는 교의신학에서, 또 일부 주제는 윤리신학에서 다루면서 독립적인 신학 분야로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교의신학과 윤리신학에서 독립되는 영성신학

20세기 초반에 교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을 다루는 학문을 수덕신학과 신비신학으로 귀결시키는가 싶더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전환점으로 '영성'과 '영성신학'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1965년 공표된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 「온 교회의 열망(Optatam Tptius)」은 다양한 맥락 아래에서 영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특히 사제를 양성하는 신학생들의 교육 현장에서 신학생들의 영성생활을 심화시킬 수 있는 '영성교육(institutio spiritualis)'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사제 양성 교령, 4ㆍ8ㆍ16항 참조) 비록 교령은 '영성신학(theologia spiritualis)'이라는 용어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교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의회에 참석한 주교들과 신학자들이 이 용어를 사용하길 바라면서 교령 초안에 영성신학이라는 표현을 담았습니다.

또한, 가톨릭교육성은 1970년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Ratio Fundamentalis Institutionis Sacerdotalis)」을 발표하면서 신학교육 과목을 설명하는 가운데 교의신학 및 윤리신학과 분명하게 구분해서 영성신학을 언급했습니다. 특히 영성신학이라는 과목은 사제 및 수도자의 영성생활을 연구해 그들이 처한 신분에 따라 각자 완덕의 길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79항 참조), 독립 학문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만들었습니다.

한편,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Ioannes Paulus PP. II, 재임 1978~2005)은 1979년 교회 대학 및 대학교의 운영 규정을 담은 교황령 「그리스도교적 지혜(Sapientia Christiana)」를 발표하고, 2주 후 교황령의 가르침이 올바로 시행될 수 있도록 가톨릭교육성이 발표한 「시행 규칙(Norme Applicative)」에서도 교의신학 및 윤리신학과 더불어 영성신학을 언급했습니다.(「시행 규칙」 제51조) 따라서 영성신학은 수덕신학과 신비신학을 대신해 교회에서 사용하는 공식적인 명칭으로 자리 잡게 됐으며, 교의신학 및 윤리신학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독립된 학문 분야의 지위를 공고히 했습니다. 이후 교회 문헌에서는 영성신학이 보편적인 용어가 됐습니다.



영성신학 용어 정착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하여 '영성' 및 '영성신학'이라는 용어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공의회 이전에 이미 다양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랑스 출신 신학자 피에르 푸라(Pierre Pourrat, 1871~1957)는 1927~1931년 저서 「그리스도교 영성(La spiritualit chrtienne)」을 출판하면서 책의 서문에 교의신학은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을 가르치고, 윤리신학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것과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가르친다면 이 두 신학을 기초로 해서 영성신학이 나온다고 언급했습니다. 또 영성신학은 수덕신학과 신비신학으로 나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푸라가 서문에서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서에서 사변적인 관점으로 영성신학의 내용을 다루지 않고 고대부터 근세까지 그리스도교 영성 역사를 통시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이 다소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한편, 프랑스에서 1928년 조제프 드 기베르(Joseph de Guibert, 1877~1942)를 포함한 예수회의 몇몇 사제들은 「영성 사전(Dictionnaire de spiritualit)」을 출판할 계획을 마련했습니다. 1932년 그 첫 권이 출판된 이후 1995년까지 거의 60여 년 동안 총 17부로 구성된 45권의 영성을 주제로 한 백과사전이 출간됐습니다. 그리고 출판 중에 '수덕 및 신비, 교의 및 역사(asctique et mystique, doctrine et histoire)'라는 부제를 첨가했습니다. 이 백과사전은 영성신학에서 다룰 수 있는 모든 주제를 다뤘기에, 가톨릭교회에서 영성신학 및 영성 역사와 관련된 저서가 출판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다양한 신분과 배경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도 영성신학 분야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중에서 프랑스 출신 철학자 자크 마리탱(Jacques Maritain, 1882~1973)은 개신교 가정에서 성장했으나, 1906년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 사상을 접하면서 평신도로서 가톨릭 신학에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교적 인본주의를 펼쳤던 마리탱은 영성신학 분야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접목해 연구하는 가운데 성령의 은사가 인간의 정감적 기능을 통해 작용하면서 신비체험에 다다르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영성과 영성신학이라는 용어가 불과 반세기 전 교회 안에 정착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교회는 영성이라는 용어를 선택하면서 교회 역사 안에서 영성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발생했던 문제들을 극복하고 해소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게다가 많은 교의 신학자들도 차차 영성신학 분야에 관심을 두고 연구에 참여하면서 영성신학 분야는 점점 풍성해졌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기사원문 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8.11.07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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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말씀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13-35 주간 첫날 바로 그날 예수님의 13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14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15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18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20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23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34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35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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